■ 라이프점프 ‘커튼콜’은…
유명 작가 스티븐 킹은 부고 기사를 쇼가 끝난 뒤 배우들이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인사하는 ‘커튼콜’에 비유했습니다. 부고 기사는 ‘죽음’이 계기가 되지만 ‘삶’을 조명하는 글입니다. 라이프점프의 ‘커튼콜’은 우리 곁을 떠나간 사람들을 추억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를 되밟아보는 코너입니다.
스스로를 인터넷 폐인이자 ‘꽃노털(꽃미남처럼 사랑받을 만한 노인)’이라 불렀던 사람. 우리의 기억 속엔 ‘문단의 도인’이자 ‘트위터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사람. 바로 소설가 이외수 씨다. 그가 지난 25일 뇌출혈 투병 중 7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 씨는 지난 2014년 위출혈이 있어 병원을 찾은 뒤 위암 2기 판정을 받아 수술 후 회복한 바 있다. 이후 2020년 3월엔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를 받던 중 올 3월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인해 폐렴에 걸려 회복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 그의 곁을 지킨 장남 이한얼 씨는 이 씨의 마지막 순간을 편히 영원한 잠에 빠지는 듯한 호상이었다고 전했다. 이한얼 씨는 “존버(존재하게 버틴다)의 창시자답게 재활을 열심히 하셨는데, 여러분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게 너무 안타깝다”며, “지금이라도 깨우면 일어나실 것 같은데 너무 곤히 잠들어 그러질 못하겠다”고 했다.
이외수 씨는 1946년 9월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직업군인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가에서 태어나 바깥 외(外)자와 항렬자인 빼어날 수(秀)를 합해 ‘이외수’가 됐다고 한다. 이 씨의 아버지는 전역한 뒤 교사가 돼 그의 담임을 맡기도 했는데,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이 씨도 1964년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런 그의 꿈은 교사가 아닌 화가였다. 화가가 되고 싶어 춘천교대 재학 중 미전에 출전해 입상한 경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결국 꿈을 접었다.
이 씨가 소설가가 된 건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되면서다. 3년 후 중편소설인 ‘훈장’이 문예지 ‘세대’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들개’, ‘칼’, ‘장수하늘소’, ‘꿈꾸는 식물’, ‘벽 오금학도’, ‘괴물’, ‘장외인간’, ‘하악하악’, ‘청춘불패’ 등을 출간했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과 시트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며 독자들과 소통하려 애썼다. 이외수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트위터 폴로어 수가 177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특히 거침없는 정치적 발언을 쏟아내 한때 ‘트위터 대통령’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씨는 SNS 활동을 활발히 한 이유에 대해 “계급장 떼고 평등하게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씨는 2008년 출간된 책 ‘하악하악’을 통해 “우리가 만나는 사람 중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망각의 늪 속으로 사라져버릴 사람이 있고,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있을 사람이 있다”고 했다. 특유의 장발 꽁지머리를 하고 스스럼없이 말을 뱉어내던 소설가 이외수는 우리의 기억의 강기슭에 남아 때때로 삶을 채워줄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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