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영~창!” 지난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에 울려 퍼진 이 한마디에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한국 대표단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평창의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발표한 목소리의 주인공 자크 로게 전 IOC 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 30일 AP·AFP 통신 등에 따르면 IOC는 사인 등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로게 전 위원장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1942년 벨기에 겐트에서 태어나 2001년부터 2013년까지 IOC를 이끈 로게 전 위원장은 한국인들에게도 꽤 낯이 익은 인물이다. 2011년 7월 더반에서 열린 IOC 총회 때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이 선정됐음을 발표한 사람이 바로 그다. 당시 로게 전 위원장은 ‘PYEONGCHANG 2018’이라고 적힌 흰 종이를 들어 보이며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평창’을 말했다.
벨기에 요트 국가대표로 1976년까지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 로게 전 위원장은 올림픽 출전 선수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 IOC 수장에 오르는 기록을 썼다. 럭비 국가대표도 지냈고 스포츠의학을 전공한 정형외과 의사이기도 했다.
로게 전 위원장은 재임 중 도핑과 뇌물 근절에 힘써 ‘미스터 클린’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001년 당시 김운용 IOC 부위원장 등 경쟁자들을 누르고 조직 입문 10년 만에 위원장직에 오른 그는 부정부패, 약물, 불법 스포츠 도박, 승부 조작 등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했다. 앞서 1991년 IOC 위원에 선출된 뒤 의무분과위원회 소속으로 약물 퇴치 운동에 앞장섰고 1998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한 뇌물 스캔들이 터졌을 때는 IOC 개혁 운동을 주도했다.
동·하계 올림픽이 세 번씩 치러진 로게 전 위원장의 재임 기간에 IOC는 재정 건전성을 회복한 것은 물론 조직을 일신해 부패 이미지를 씻는 등 비교적 번영기를 구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상 첫 남미 하계올림픽 개최(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러시아의 사상 첫 동계올림픽 개최(2014년 소치) 등 올림픽 저변 확대에 있어 중요한 계기도 로게 전 위원장의 재임 기간에 결정됐다. IOC 위원장직을 내려놓은 뒤에는 유엔에서 청소년·난민·스포츠 특사로 활동했다.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로게 전 위원장은 스포츠, 선수들과 함께하는 것을 사랑했으며 그 열정을 그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했다”면서 “그는 IOC의 현대화와 개혁을 도운 뛰어난 위원장이었다. 클린 스포츠를 지지하며 도핑에 맞서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IOC 위원으로 함께 선출된 우리는 멋진 우정을 나눴으며 이는 그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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