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청구서가 하나둘 날아오고 있다. 정부는 우선 탈원전 정책에 따른 직접적 비용을 준조세 격인 ‘전기요금(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올 연말부터 보전하도록 했다. 전력기금은 신재생 확대와 같은 에너지 정책 추진 시 이를 뒷받침할 ‘자금줄’ 및 ‘비상금’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기금 지출 확대가 국내 에너지산업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급등하고 있는 에너지 가격은 또 다른 탈원전 청구서다. 신한울 3·4호기가 4년 넘게 착공을 못하는 등 국내 원전 산업이 뒷걸음질 치는 사이 여타 연료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발전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석탄 가격은 최근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수요 증가와 맞물려 반년 새 2배가량 껑충 뛰었다. 발전 단가가 원자력 대비 1.6배 수준인 액화천연가스(LNG) 시장 또한 글로벌 탄소 중립 기조 강화와 맞물려 각국이 치열한 확보 전쟁을 벌이며 장기적인 가격 상승이 예상된다.
글로벌 탄소 중립 기조에 발맞춰 미국과 유럽 등 각국이 다시금 원전 산업에 힘을 주고 있지만 탈원전이라는 우리 정부의 정책 기조는 요지부동이라 국민 개개인의 준조세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1일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력기금은 지난 2019년 한 해에만 △전력 효율 향상 △에너지저장장치(ESS) 안전조치 이행 △개방형 전기차 충전소 보급지원 △농어촌 전기 공급 지원 △에너지 신기술 표준화 및 인증 지원 등 5개 분야에서 총 580억원가량의 지출을 애초 계획 대비 늘렸다. 전력 효율 향상 항목의 경우 고효율 가전제품 환급 사업을 위해 178억 원을, ESS 안전조치 이행은 화재 관련 대응을 위해 78억 원을 각각 증액하는 등 당시 지출 확대가 불가피했다는 것이 관려 부처의 설명이다.
반면 정부의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올 12월부터는 탈원전에 따른 비용을 전력기금이 부담하게 되면서 이 같은 지출 확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무경 의원실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에 따른 원전 해체 등의 직접적 비용은 최소 1조 4,445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그만큼 전력기금의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전력기금의 활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도 국민 부담 증대로 이어진다. 한국전력이 지난달 29일 발간한 ‘2021년도판 한국전력통계’ 자료에 따르면 원전의 발전 단가는 1㎾h당 59원 60전으로 주요 에너지원 중 압도적 가격 경쟁력을 자랑한다. 반면 국내 발전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유연탄의 발전 단가는 1㎾h당 82원 10전을 기록했으며 LNG(98원 80전), 신재생에너지(81원 70전) 등 여타 에너지원의 가격은 원전 대비 1.3~1.6배가량 높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는 일종의 보조금 격인 공급인증서(REC) 부담까지 감안하면 원전 발전 단가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비율(RPS) 관련 지출은 전체 전력 구입액의 4.6%를 차지하며 신재생에너지 구입액 비율(0.6%)의 7배 이상을 차지했다.
이 같은 원자력과 기타 에너지원의 가격 단가 차이는 갈수록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선 호주 뉴캐슬 현물 기준 전력용 유연탄 가격은 지난해 11월 말 1톤당 68.2달러에서 지난달 말에는 123.8달러로 반 년 만에 2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LNG 가격은 수입가 기준으로 지난해 10월 1톤당 275.8달러에서 올 4월에는 384.9달러를 기록했으며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11월 말 배럴당 47.0달러에서 지난달 말에는 67.9달러로 치솟았다. 발전설비만 갖추면 우라늄 등 연료비 부담이 거의 없는 원자력과의 발전 단가가 갈수록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이 올해부터 에너지 가격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 조정이 가능하게 한 ‘연료비연동제’를 도입한 만큼 탈원전 청구서가 전기요금으로 바로 고지되는 셈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전기료에서 3.7%를 징수하는 전력기금의 재원 확대로도 이어지지만 기금 지출 항목이 갈수록 늘고 있어 기금의 건전성은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세울 당시 해당 정책이 국민에게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를 살펴보고 시행을 해야되는데,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과 같은 국민 부담 증가는 탈원전 정책이 얼마나 준비 없이 시행됐는지를 잘 보여준다”며 “무엇보다 전력기금의 경우 관련 법이 아닌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도록 한 것은 ‘꼼수’로 보인다”고 밝혔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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