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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핑크빛이 '칠'렁…봄 '곡'간이 넘실

◆'핫플 여행'으로 떠오르는 경북 칠곡

분홍색 꽃잔디가 이불처럼 뒤덮은 가산수피아

연보랏빛 백리향 꽃길 등 절정의 봄 내음 물씬

곳곳 대형 조형물에 미술관·공룡뜰도 볼거리

1,000년 넘게 자리 지킨 도덕암 모과나무엔

달콤한 향기 품은 '연분홍빛 꽃'들이 한가득

각산마을 들어서면 '전설의 은행나무'가 반겨

수피아미술관 위에 심어진 꽃잔디가 진분홍빛으로 빛나고 있다. 꽃잔디는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 꽃잔디가 심어진 공간 아래로 들어가면 수피아미술관이다. /사진 제공=칠곡군청




고려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혈투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전쟁까지. 낙동강을 끼고 있는 경북 칠곡은 역사적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호국의 고장'이라는 이미지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칠곡의 보석 같은 풍경을 오랜 세월 가려 놓았다. 그런데 과거 전적지를 중심으로 한 안보 관광이 주를 이루던 칠곡의 여행 풍경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계기로 하나둘 바뀌어가고 있다. 봄기운이 완연한 시기, 꽃향기 가득한 칠곡의 새로운 여행지들을 다녀왔다.

가산수피아 입구에 세워진 말 조형물은 가까이 봐야만 조형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만큼 주변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다.


◇SNS ‘핫플’로 떠오른 가산수피아…올봄은 꽃잔디가 주인공=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칠곡군 가산면에 자리한 가산수피아다. '수피아'는 숲의 요정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지난 2019년 4월 개장한 이곳은 원래 양돈 사육장이 있던 땅을 지역의 한 사업가가 매입해 4년 전부터 꽃과 나무를 심어 조성한 정원이다. 전체 221만 4,000여 ㎡(67만여 평) 가운데 현재 개방된 곳은 약 13만 2,000㎡(4만여 평). 국내 민간 정원으로는 최대 규모다.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만발한 핑크뮬리 사진이 퍼지면서 하루 1만 명 이상이 찾는 지역 최고의 명소로 떠올랐다.

코로나19로 봄 소풍이 사라진 초등학생들이 오랜만에 야외로 나와 마음껏 뛰어놀고 있다.


가산수피아가 자리한 곳은 유학산(해발 839m) 자락이다. 구미로 이어지는 514번 지방도를 타고 가다 학하리 마을 안길로 10여 분을 들어가면 가산수피아 이정표가 나온다. 작두펌프를 형상화한 대형 조형물을 지나 매표소를 통과하면 드넓은 들판에 꽃과 나무로 가득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끄는 건 꽃잔디다. 벚꽃 만큼이나 일찍 핀 분홍색 꽃잔디가 나지막한 언덕 위를 이불처럼 뒤덮고 있다. 꽃잔디로 뒤덮힌 곳은 미술관이다. 산 중턱 오르막을 터널처럼 뚫어 그 안쪽에 전시 공간을 마련하고 위로는 꽃잔디를 심어 꽃동산으로 만들었다. 꽃잔디는 4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 절정을 이룬다.

가산수피아 천년솔숲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햇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나무가 빼곡하다.


본격적인 산책은 지금부터다. 미술관 옆 암석정원과 공룡뜰을 통과하면 파리비에가든과 분재원을 지나 테마정원으로 연결된다. 테마정원은 연못을 중심으로 계절마다 주제를 달리하는 꽃과 나무로 꾸며졌다. 올봄 주제는 백리향이다. 개화를 앞두고 연보랏빛 꽃봉오리가 한가득 솟아오른 꽃길을 따라 정원을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

가산수피아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은 레일썰매장이다. 레일썰매는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사계절 썰매다.


소나무 정원인 천년솔숲 황톳길은 황토 위에 멍석을 깔아 솔향을 맡으며 푹신푹신한 길을 걸을 수 있게 했다. 숲속으로 들어가면 이끼로 뒤덮힌 바위가 놓인 이끼정원과 산비탈에 크고 작은 돌들로 가득한 돌너덜을 들러 유학산까지 올라갈 수 있다. 유학산은 6·25전쟁 최대 격전지인 '다부동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공룡뜰에 세워진 몸길이 42m짜리 초대형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공룡 조형물로 기록돼 있다. 모양만 공룡이 아니라 머리와 꼬리를 움직이며 소리도 낸다.


정원 오른쪽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을 위한 공간이다. 공룡뜰에는 몸길이 42m의 세계에서 가장 큰 공룡 조형물인 브라키오사우루스와 티라노사우루스·트리케라톱스 등 다양한 공룡 조형물 10여 점이 들어서 있다. 공룡뜰 아래는 카라반 숙소인 잠뜰이다. 카라반 10여 대가 나무 사이로 세워져 있어 숙박도 가능하다.

수피아미술관에서는 올해 첫 기획전인 '화려한 향연(饗宴)'이 진행 중이다. 사진 왼쪽은 제2전시관에 걸린 장선자 작가의 정물화 작품이다.


수피아미술관은 가산수피아 내에 있지만 별도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전문 큐레이터가 상주하고 입장료도 따로 내야 한다. 1·2전시관에서 진행되는 올해 첫 번째 기획전 '화려한 향연(饗宴)'은 모지선·이종선 등 여성 작가 5인의 작품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3전시장은 13세 동화 작가 전이수 군의 작품을 일 년 내내 볼 수 있는 상설 전시장이다. 최근 미술품 투자 열풍이 불면서 전 군의 작품을 사기 위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도덕암 모과나무가 연분홍색 꽃을 활짝 피웠다.




◇천년 모과꽃 향에 취하고, ‘말하는 은행나무’에서 소원도 빌고=칠곡에는 그동안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볼거리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령 1,000년에 가까운 노거수 두 그루다. 칠곡에서 벌어진 전쟁들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나무들이다.

도덕암 범종각 뒤편에 자리한 모과나무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1,000년 넘게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먼저 만나볼 주인공은 산중 암자에서 1,0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도덕암 모과나무다. 이 나무는 고려 광종 19년(968년)에 혜거국사(899~974년)가 칠성암이라는 사명으로 도덕암을 중수하면서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2004년 경상북도가 보호수로 지정하면서 수령을 800년으로 못 박았지만 혜거국사가 도덕암을 중수한 시기나 입적 시기를 고려하면 모과나무의 수령이 적어도 1,000년을 훌쩍 넘었다는 사찰 측의 주장도 무리가 아니다. 수령으로 따지면 국내 모과나무 중 가장 오래된 나무이고 사찰에 심어진 나무 중에는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수령 1,100년 추정) 다음으로 나이가 많다.

수령 1,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도덕암 모과나무는 매년 꽃과 열매를 맺으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모과나무의 평균 수령은 기껏해야 300년이지만 도덕암 범종각 뒤에 자리한 이 모과나무는 평균 수령을 한참 넘긴 지금도 해마다 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는다. 모과나무라고 하면 향긋한 열매만 떠올리기 쉽지만 꽃 역시 과일 꽃 중에서 최고로 꼽힐 만큼 매혹적이다.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모과꽃은 4월 초면 서서히 연한 분홍색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시작해 4월 말이면 만개한다. 꽃이 많이 핀 해에는 열매도 풍성하다. 도덕암 모과나무는 올해도 연분홍빛 꽃을 한가득 매달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로 널리 알려진 것은 엉뚱하게도 수령 300년가량인 창원 의림사 인곡리 모과나무와 정읍 내장사 원적암 모과나무다. 나무 크기나 모양새는 도덕암 모과나무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지만 수령이 짧아 천연기념물 기준에는 한참 부족하다. 국내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모과나무는 수령 5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청주 연제리 모과나무(천연기념물 제522호)가 대표적이다. 도덕암 모과나무는 아쉽게도 크기나 모양새 때문에 천연기념물 심사에서 번번이 퇴짜를 맞고 있다고 한다.

도덕암 모과나무가 외부에 덜 알려진 이유는 도덕암의 위치와도 연관이 있다. 도덕산(해발 660m) 정상 언저리 산비탈에 위치한 도덕암은 찾아가기가 어렵고 인근 팔공산의 유명 사찰들에 가려져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티재로 유명한 79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송림사를 조금 지나 도덕암으로 빠지는 임도로 연결되는데 승용차로 가기에도 버거울 만큼 가파른 오르막을 2㎞나 올라야 해서 걸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경내에는 조선 철종 13년에 그려진 몽계당 선의대사의 진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7호)이 보관돼 있다. 도덕암 극락보전 뒤편에는 고려 광종이 마시고 위장병을 고쳤다는 어정수(御井水)가 남아 있다.

천년고찰 도덕암 산신각은 목탁대사가 앞바위에 앉아 새벽 일출을 화두로 삼아 참선해 득도했다고 알려져 있다. 도덕암은 법당 지붕이 맞닿아 있을 정도로 경내 면적이 협소하다.


기산면 각산마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한 은행나무도 만나볼 수 있다. 지명을 따 '각산 은행나무' 혹은 '말하는 은행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는 '칠곡'이라는 지명이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현종 9년(1018년) 전후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를 갖지 못하던 새색시의 소원을 들어줬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은행나무가 꿈에 나타나 고민을 들어줬다고 한다.

기산면 각산마을에 자리한 ‘말하는 은행나무’는 수령 1,000년이 넘은 노거수이지만 매년 봄이면 어린 나무처럼 싱싱한 잎을 피워낸다. /사진 제공=칠곡군청


수고 30m, 둘레 7m에 달하는 나무에 단풍이 들면 노란 은행잎이 주변을 뒤덮어 장관을 연출한다. 은행나무를 보러 가기 제일 좋은 계절은 가을이지만 새싹이 돋아나는 봄에는 사람을 피해 조금 더 한적하게 쉬었다가 갈 수 있다. 마을에서는 은행나무에서 출발해 주변 숲을 걷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글·사진(칠곡)=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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