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성 흡착제 '마그네슘실리케이트'의 국산화에 성공한 자이언트케미칼은 경남 양산에 있는 소재·부품 스타트업이다. 마그네슘실리케이트는 다공성 흡착제로 식품·의료·환경·공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불순물 제거에 활용되는데, 그동안 해외 수입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자이언트케미칼은 2015년 이 같은 핵심 소재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투자사가 몰려있는 서울과는 4~5시간 거리로 멀어 초기 자금 마련이 더뎠다. 어려움을 겪던 자이언트케미칼에게 희망의 불빛이 된 곳은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을 중심으로 한 지역 특화 엑셀러레이터(AC) '시리즈벤처스'였다.
시리즈벤처스가 시드(Seed) 투자에 나서면서 두 곳 모두 윈윈에 성공했다. 자이언트케미칼은 지난해 아기유니콘 200, 그린뉴딜 유망기업 100에도 선정되며 대통령 표창장까지 받았다. 시리즈벤처스 또한 투자금의 7배에 달하는 수익을 회수했다. 1일 서울경제와 만난 곽성욱(사진) 시리즈벤처스 대표는 제2, 제3의 자이언트케미칼 발굴을 확신하며 "제조 인프라가 탄탄한 부울경 지역은 적절한 초기 투자와 컨설팅만 해주면 언제든지 경쟁력있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스타트업이 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초기 창업자를 발굴하고 투자해 육성하는 엑셀러레이터는 벌써 국내에 300개사가 등장해 스타트업 생태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중 70% 가까이는 수도권에 쏠려 지방은 소외됐다. 창업을 통한 혁신이 산업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이면에는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리즈벤처스는 이 가운데서 지역 특화 엑셀러레이터로 활동하며 유의미한 투자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곳이다. 특히 부울경 지역의 소부장 스타트업 생태계를 개척하고 있다. 곽 대표는 "일본의 수출 규제부터 그린뉴딜까지 정부와 민간의 소부장 지원이 늘어나면서 지역 사회 공헌 차원이 아니라 전국을 넘어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 가능성 있는 제조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면서 "판교에서 게임 회사 창업이 유리하듯 부울경은 새로운 형태의 제조 기업이 커나가기 좋은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즈벤처스의 가장 큰 강점은 우수한 소부장 스타트업을 찾아내는 노하우에 있다. 2017년 박준상 대표와 공동 설립한 뒤 '예비창업패키지', '소부장 스타트업 100' 등 정부 주도의 지역 창업 지원 사업에서 수많은 심사와 운영을 맡으며 '보는 눈'을 키웠다. 곽 대표는 "수많은 심사를 포함해 미팅으로 하루 평균 20팀씩 1년에 3,000팀 이상의 창업자를 만나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제조 분야에서는 어떤 창업 자세가 필요한지, 기술적으로는 어느 수준인지 가장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리즈벤처스의 투자 대상은 일반 벤처캐피털(VC)의 포트폴리오와는 차별화된다. 남해에서 스마트 양식 시스템을 개발하는 '제이제이앤컴퍼니스', 약사가 만든 유산균 건강기능식품 스타트업 '킥더허들' 등이 대표적이다. 경남창조경제혁신센터와 50억 원 규모의 지스트롱(G-StRONG) 혁신창업펀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간 공로를 인정받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는 우수창업기획자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시리즈벤처스는 올해 지역 기반으로 창업 생태계의 판을 키우는 것이 목표다. 곽 대표는 "지역 창업 시장을 독차지하기보다는 서울과 글로벌 VC들도 지사를 부울경에 설립해 지역 스타트업 규모가 커지길 기대한다"며 “부울경이 강점인 스타트업을 육성해 지역 일자리를 지키기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민간 주도형 창업 지원 프로그램(TIPS)을 유치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이재명 기자 now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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