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의 파운드리(위탁 생산) 사업 진출은 글로벌 시장의 일대 변화를 예고한다. 첨단 공정 지연 등으로 위기에 처한 인텔은 23일 파운드리를 새 승부수로 택하며 200억 달러를 투입해 두 곳에 공장을 신설하기로 했다. IBM을 연구개발 파트너로 삼고 아마존·구글·퀄컴·애플 등을 고객사로 확보할 것이라며 ‘거대 반도체 연합군’의 탄생을 예고했다. 로이터통신은 “인텔의 결정은 파운드리 시장을 장악 중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했다. TSMC는 올해 삼성의 두 배가 넘는 280억 달러를 설비투자에 쏟을 계획이어서 우리로서는 달아나는 선두와 공룡 후발 업체에 꼼짝없이 끼일 판이다.
우리의 주력 분야인 메모리 반도체에도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말 업계 처음으로 176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들어갔고 중국은 한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첨단 디스플레이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매섭다. 중국 최대 업체인 BOE가 삼성 휴대폰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공급하고 일부 업체는 TV용 대형 OLED 패널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에 이어 OLED마저 중국에 뺏길 위기에 처했다. 배터리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끼리 싸우는 동안 폭스바겐이 우리의 주력인 ‘파우치형’ 대신 ‘각형’을 쓰기로 하고 자체 생산에 들어간다.
게다가 각국 정부가 전면전에 나서고 있어 더 걱정된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등의 부활을 위한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3조 달러의 2차 부양책을 통해 5G 통신 등 첨단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중국은 ‘칼을 가는 심정’으로 8대 신산업을 키우겠다고 했다. 첨단산업은 초격차 기술이 없으면 한순간에 판도가 뒤집어진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학계와 함께 첨단산업 발전 전략을 새로 짜고 세제와 규제 완화 등 전방위 지원책을 꺼내야 한다. 지금처럼 기업의 발목만 잡을 경우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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