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10년. 사고 이후 ‘원전 포비아(공포)’에 빠진 듯했던 각국은 이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순배출 ‘제로(0)’ 달성을 위해 탄소 배출이 가장 적은 발전원인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후쿠시마 사고를 겪고 나서도 일본은 ‘원전 유지’ 방침을 세웠고, 중국은 ‘해상 원전’ 개발 계획까지 발표하며 동북아 에너지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나 홀로 후쿠시마의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탈(脫)원전과 탄소 중립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에너지 전환의 목적이 탄소 중립이라면 무탄소 전원으로 인정받는 원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신한울 3·4호기 사업 허가 연장도 사업 취소를 위한 연장이 아니라 사업 재개를 위한 연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각국은 탄소 중립을 위해 원전을 에너지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영국은 오는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50% 이상으로 확대하고 나머지를 원전과 가스 발전 등으로 채우는 국가 전원 믹스를 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원전 이용도 2050년까지 계속 확대한다. 미국의 탄소 중립 로드맵은 차세대 원전을 청정에너지로 분류해 재생에너지와 동등하게 인식하고 있다. 또 양국은 원전 신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향후 7년간 총 32억 달러, 영국은 5년 동안 2억 파운드를 차세대 원전인 소형 모듈 원자로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역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되 탈원전 또는 탈석탄 등 기저 발전 감축 정책을 펼칠 계획은 현재 세우지 않았다. 특히 탄소 중립을 위한 전력 부문 추진 전략에 ‘원자력의 경우 기존 원전 수명을 연장하고 안전이 개선된 원자로를 건설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따라 45~46년 사용된 다카하마 원전 1·2호기가 재가동되는 등 노후 원전 4기가 연장된다. 이미 원전 수출 강국으로 자리 잡은 중국은 최근 2035년까지 ‘해상 부유식 핵동력 플랫폼’ 사업 추진을 밝힌 바 있다. 해당 사업은 바지선이나 선박에 실려 해상에서 운영되는 원전을 짓는 것으로 한마디로 ‘떠다니는 소형 원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11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 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에 따라 2025년까지 20기의 원전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원전 비중은 2019년 4.6%에서 2035년 12.2%로 3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탄소 중립 추진 전략’에는 원전 활용이 완전히 빠져 있다. 대신 정부는 에너지 분야에서 재생에너지와 수소 등 신에너지 비중을 대폭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전력 업계는 원전을 활용하지 않을 경우 탄소 중립 달성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한국과 마찬가지로 탈원전 정책을 시행 중인 독일은 2038년 탈석탄 달성이 목표인데 이는 원전 비중을 유지하는 영국 탈석탄 시기(2025년)에 비해 10년 이상 늦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후쿠시마 공포에 기초한 탈원전을 폐기해 스스로 만든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원자력 전문가들은 한국형 원자로의 경우 격납 용기 내부 체적이 5배가량 크고 증기 발생기를 사용해 후쿠시마에서 사고가 난 원전과 달리 폭발과 방사능 물질 유출 가능성이 낮다고 강조했다. 정재준 부산대 교수는 “3년간 진행된 탈원전 정책에 60년 공들인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이 속수무책으로 붕괴되고 있다”며 “원전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없는 청정에너지 공급원이며 에너지 안보의 버팀목이고 수출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