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 자녀들의 사례는 ‘스마트 기술 시대의 역설’을 보여준다. 새로운 정보기술(IT)에 매우 수용적인 유소년들조차 전통적 기록매체인 다이어리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고 동년배들의 ‘인싸문화(주류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이어리를 소장하고 꾸미기 좋아하는 이른바 ‘다꾸족’의 귀환이다. 주요 출판사·문구업체들은 이 같은 추세에 합류해 ‘펭O’ 같은 인기 캐릭터를 모티브로 한 다이어리 상품들을 최근 내놓아 매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연령별로는 1020세대 같은 청소년·청년층뿐 아니라 중장년 세대, 직종별로는 학생·직장인·사업자와 전업주부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계층에서 ‘다꾸문화’가 살아나는 분위기다. 카페 프렌차이즈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업체들은 이 같은 흐름을 일찌감치 감지해 자사 매장에 다양한 색감과 디자인의 다이어리 상품들을 비치하는 마케팅 전략을 펴며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실제로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는 ‘OO벅스 다이어리 OO 컬러 어디서 구하셨나요’ 등과 같은 문의와 관련 답변들이 연말연시를 앞두고 자주 눈에 띄고 있다.
스마트폰 같은 이동통신기기에 일정관리 및 캘린더 애플리케이션들이 설치돼 있음에도 오프라인 다이어리 수요가 여전한 것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기능성·편의성 못지않게 정체성·가치성 등을 따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요즘엔 소비가 단순한 구매행위를 넘어 소비자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을 표현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문화행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IT가 발전할수록 남들도 비슷하게 쓰는 스마트폰 앱보다는 자신만의 색채를 넣어 꾸밀 수 있는 다이어리를 선택해 소비자의 자아를 뚜렷이 구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이 밖에 아날로그적 문화를 새로운 놀이나 문화현상으로 인식해 즐기려는 밀레니얼 세대의 기류도 다꾸문화 부활의 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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