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사서 기쁠 줄 알았는데 막상 사고 나니 그렇지 않아요. 그냥 다행일 따름이라는 생각만 들어요. 내년에는 전세를 얼마나 올려줘야 하나, 집값은 또 얼마나 무섭게 오를까, 걱정 안 해도 되니까요.”
얼마 전 30대 초반의 지인이 이른바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다. 한 달에 원리금으로 월급의 약 80%가 날아간다고 했다. 정부가 투기를 막는다며 대출을 조인 탓에 고금리 대출까지 추가로 받았다. 이른 시기에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집을 살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1~2년 더 모아봤자 월급보다 집값이 더 오른다며 더 이상 집 걱정에 매여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30대가 아파트 매수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국토교통부의 ‘매입자 연령대별 서울 아파트 거래 현황’에 따르면 10월 30대 매입이 2,581건(비중 31.2%)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청약제도가 강화돼 분양 기회가 사라진 젊은 층이 구축 아파트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해석은 현상 풀이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여기서 한 발 나아가 30대의 부동산 관심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산 증식의 답은 결국 부동산이라는 점을 똑똑한 젊은이들이 진즉 깨닫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집을 샀거나 집을 보러 다니는 30대를 보면 이 같은 분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들은 모두 집값이 오르리라고 예측은 하지만 거기에 걸고 있는 것은 기대감이 아니라 불안감이었다. 무리해서라도 지금 저지르지 않으면 ‘막차’를 영영 놓치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 집 한 채 없으면 평생 주거불안에 시달려야 할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미래. 그래서 똑똑한 이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30대의 집 구매행렬은 생각보다 먹고살 만한 젊은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주거불안에 절박한 젊은이가 많다는 뜻이다. 그나마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그렇지 못한 젊은이들의 절박감은 더욱 크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적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오히려 안정화하고 있다”며 “현 정부에서 부동산 문제에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30대도 그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그 장담을 믿고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현실이 너무 암담하다.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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