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공정거래위원회의의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 지정 발표를 앞두고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일단 한진그룹이 공정위에 동일인 변경 신청서를 자발적으로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원태 한진칼 회장이 한진그룹 차기 동일인으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에서는 고(故) 조양호 전 회장 별세 후 유족 간 갈등이 일단락됐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스스로 차기 동일인을 결정한 게 아니라 공정위가 직권으로 결정한 만큼 조 전 회장의 지분 승계 및 상속세 문제를 두고 아직 유족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재계 일각에서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이사회가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하지 않았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한진칼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조 전 회장 유족은 물론 그룹 내 주요 경영진도 차기 경영권을 두고 이합집산 양상을 보이면서 한진그룹이 심하게 요동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4일 공정위 및 업계에 따르면 한진그룹은 조원태 회장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경우에 대한 서류는 제출했지만 직접적으로 조 회장을 차기 동일인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공정위가 15일 한진그룹 차기 동일인으로 조원태 회장을 공식 발표하더라도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 한진이 제출한 자료에는 조 전 회장 지분에 대한 상속 계획도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 24일 한진칼 이사회에서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을 뿐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 한진그룹은 “한진칼이 이사회를 열어 조원태 사장을 한진칼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고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진칼 정관은 대표이사인 회장과 부회장 등의 선임은 이사회 결의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진그룹은 “당시 한진칼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 전원이 회장 취임에 동의했고 이 같은 절차는 회사 정관에 위배되는 사항이 없다”며 “한진칼 정관은 대표이사 선임 권한이 이사회에 있음을 명기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진 측은 또 “대표이사 선임에 대한 공시 의무가 있을 뿐 직함인 회장 선임에 대한 공시 의무는 없어 회장 선임을 공시하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주요 사안은 법인의 계약사항인 정관에 우선해 따져야 하고 회장 선임도 당연히 정관에 정한 대로 이사회 결의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며 “만약 이를 위반했을 경우 회사 측이 민사소송에서 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정위가 지정하는 동일인은 공정위의 업무상 편의에 따라 지정하는 것인 만큼 회장 지위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조 전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며 유언장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조 전 회장의 한진칼 지분 17.84%를 유족들이 어떤 비율로 상속받고 상속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진칼 2대주주인 KCGI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유족들이 조원태 회장을 그룹 총수로 하는 데는 합의를 봤지만 구체적인 승계 과정에서는 잡음이 빚어질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동일인 지정 이후 한진그룹 경영권의 행방을 결정지을 열쇠는 조 전 회장의 배우자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쥐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 전 회장의 한진칼 지분 17.84%를 법정 비율에 따라 상속받을 경우 이 전 이사장이 가장 많은 5.94%를 상속받고 조원태·현아·현민 3남매는 각각 3.96%를 물려받게 된다. 이 전 이사장의 결정에 따라 그룹 지배력이 바뀔 수 있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조원태 회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더라도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친인 이 전 이사장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용·박시진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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