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추진했던 주류세 개편 작업이 또 다시 연기됐다. 당초 4월말 발표 예정에서 5월 초로 미뤄진 데 이어 이번에는 기약이 없다. 정부는 오는 7월 발표하는 2020년 세제개편안에 담겠다는 계획이지만 사실상 보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소주와 맥주 가격을 동일하게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전제로 깔아둠으로써 애당초 정책 운용의 폭을 좁혀놨다고 지적했다.
김병규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류세 개편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지만 지연되고 있다”며 “구체적인 시기는 별도로 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술에 매기는 주류세를 출고가를 기준으로 하는 ‘종가세’ 대신 술의 용량이나 알코올 농도를 기준으로 하는 ‘종량세’로 바꾸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입신고가격이 기준인 수입맥주에 비해 국산맥주는 판매관리비와 이윤까지 포함한 출고가에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판매가가 비싸다는 역차별 논란이 시발점이 됐다.
개편 작업이 꼬인 건 증세 논란과 서민 반발을 우려해 “소주와 맥주 가격에 변동이 없도록 하겠다”는 원칙 때문으로 해석된다. 맥주의 경우 양을 기준으로 리터당 835원 안팎의 세금을 매기게 되면 국산 수제맥주 가격은 떨어지더라도 출고가격이 저렴했던 생맥주 가격은 소폭 오를 수 밖에 없어 해당 업체들의 불만이 제기된다.
소주나 위스키는 종량세로 바뀌면 도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한다. 예를 들어 알코올 도수 15도를 기준으로 L당 기준 세액을 정한 뒤 1도 오를 때마다 추가하는 식이다. 이 경우 소주 세금이 늘어나거나 위스키 세금이 줄어드는 선택지가 생기는데 정부가 소주 값을 유지할 계획이어서 위스키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소주와 증류주 업체들이 가격이 낮아지는 위스키와 경쟁을 하게 된다는 불만을 나타냈다. 소주 가격을 고정시키려다 보니 상대적으로 국산 술값이 오르는 것이다. 김 실장은 “소주·약주·청주·증류주·과실주 등 업계에서는 종량세로 바뀌면 제조·유통·판매구조 등에서 급격한 변화가 오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소주와 맥주 가격 변동이 없는 기본 원칙은 계속 견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주세 개편에 앞서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디아지오 등 일부 업체가 최근 맥주와 소주 가격을 올린 점도 변수가 됐다. 주세개편 연기에 가장 큰 실망감을 표한 곳은 수제맥주업계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종량세 개편을 가정하고 병·캔입 장비를 갖추는 등 신규 투자를 해온 업계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 허탈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위스키업계 관계자는 “이미 2년여 전부터 본격 논의되면서 같은 증류주 내에서도 업계 간 이견이 크다는 것이 예견됐었는데 현재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맥주만 개편한 뒤 단계적으로 주세법을 바꾸는 방안도 고려될 전망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의 관련 용역보고서는 오는 17일 나온다. 정부의 주세 개편안은 7월 세제개편안에 담길 가능성이 제기되나 아예 보류될 수 있다는 시각도 강하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교수는 “조세론적 관점에서 옳은 방향과 사회적 정책 측면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 대한 고민인데 모두를 만족시키긴 힘들다”고 강조했다.
/세종=황정원·허세민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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