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찬바람이 불었다. 잔뜩 흐린 날씨에 꽃샘추위까지 겹쳤다. 보름 전부터 벼르고 있던 충북 단양행. 달리는 데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황량한 늦겨울의 단양’만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번 ‘당일치기’ 단양 드라이브 여행은 ‘서울~단양IC~사인암~소선암공원~도담삼봉~카페 산~이끼터널’의 왕복 450㎞ 정도로 잡았다. 여행의 핵심인 단양에서의 주행은 약 48㎞ 정도 거리다. 쉬지 않고 달리면 1시간30분 정도에 주행할 수 있지만 주행 중 만나는 사인암이나 하선암, 도담삼봉 등 명소들을 둘러보면 3~4시간을 훌쩍 넘긴다. 여기에 조금만 코스를 수정하면 구담봉, 옥순봉 등 ‘단양팔경’의 대부분을 볼 수 있다. 아울러 소선암오토캠핑장 등 곳곳에 자동차 캠핑장이 있어 캠핑족들에게도 인기가 있을 만한 곳이다.
서울에서 200㎞ 정도를 달려 도착한 단양은 늦겨울과 초봄의 풍경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정상 부분에는 간혹 녹지 않은 눈이 보이기도 했다. 도로변에는 아직 ‘신록’의 자취를 살펴볼 수 없었지만 성격 급한 꽃들이 피어 봄을 재촉했다. 단양 드라이브 코스의 특징은 대개 한 쪽 면에는 강이나 계곡이 흐르는 왕복 2차선 또는 4차선의 도로가 많다는 점이다. 최고 속력 시속 60~70㎞대 구간이 대부분이지만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 창문을 열고 느긋하게 자연을 감상하면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느리게 천천히 차를 몰고 간다고 뒤차의 경적 소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남한강변의 삼봉로를 제외하고는 쭉 뻗은 직선도로는 적고 구불구불한 계곡 사면 도로가 많다. 그래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차량보다는 스티어링 휠의 조작대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조향감 좋은 차량이 단양 드라이브 코스에는 적당하게 느껴졌다.
이 때문에 단양까지 함께 달릴 차는 현대자동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플래그십인 G90 3.8ℓ 가솔린 모델로 골랐다.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해 선보였으며 이전의 ‘EQ900’이라는 이름을 버릴 정도로 디자인 면에서 신차급으로 탈바꿈했다.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모델답게 무시무시한 덩치를 자랑한다. 전장 5,205㎜, 전폭 1,915㎜, 전고 1,495㎜로 메르세데스-벤츠의 S클래스 350d보다 길이와 폭은 더 넓고 높이는 낮아 날렵한 모습을 보인다.
이전 모델인 EQ900은 운전기사를 두고 타는 ‘쇼퍼 드리븐 카’였다. 하지만 새로 나온 G90은 직접 차를 운전하는 ‘오너 드리븐 카’로서의 지향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운전석에 앉으면 시트가 운전자를 감싸면서 무게중심이 아래로 착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행 모드는 컴포트·에코·스포츠·커스텀 4가지를 지원한다. 모드마다 다른 주행감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일반인은 스포츠 모드를 제외하고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듯했다. 다만 스포츠 모드는 확실히 달랐다. 스티어링 휠의 조작감이 묵직하게 변하면서 가속페달을 밟을 때 치고 나가는 맛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 G90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티어링 휠의 무게가 예상보다 가벼워 2톤이 넘는 대형 세단임에도 조작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뒷자리 승객의 승차감을 고려한 듯 가속페달의 반응 속도가 즉각적이지 않아 순발력이 다소 떨어질 듯한 느낌이었다. 이 역시 G90이 오너 드리븐 카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쇼퍼 드리븐 카의 유전자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생각됐다.
G90의 또 다른 장점은 정숙성이다. 스마트폰 소음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공회전(아이들링)을 할 경우 실내 소음은 40㏈(데시벨) 아래로 떨어졌다. 시속 100㎞ 정속 주행 시에는 60㏈ 중반 정도였다. 엔진룸의 소음이 실내로 비집고 들어오지 않았고 가속페달을 밟을 때 발바닥부터 전해져오는 진동도 거의 없었다. 고속 주행 시 들려오는 바람 소리가 유일한 소음이었다.
서울로 복귀하는 동안 날씨는 더 심술을 부렸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으며 수도권에 진입하자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다. 악화한 기상 조건에서 G90의 운전자보조 시스템은 빛을 발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앞선 차들이 서행하는 것을 보고 시속 60㎞의 크루즈 기능과 고속도로 주행보조 시스템(HDA)을 켰다. 앞차와의 차간 거리는 최대로 해놓으니 차가 스스로 속도를 높이거나 낮추면서 운행을 했다. 평소 운전자보조 시스템에 대해 불안감이 컸지만 자율주행 기술에 대한 불신을 다소 없앨 수 있었다는 점도 이번 드라이브를 통해 얻은 소득이었다.
/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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