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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서 벌어 갚으면 되지...장학금 상환 무섭다고 中企 가겠나"

<현실과 동떨어진 중기 취업 장학금>

의무규정 위반 때 환수금 최대 3,000만원 달해도

대기업에 몇 개월만 근무하면 충분히 감당 가능

'고졸 후학습자 장학금'도 중장년만 몰려 취지 무색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체육관에서 열린 ‘정보보호 취업박람회’에서 구직 희망자들이 채용공고 게시판을 살펴보는 등 일자리를 찾고 있다. /서울경제DB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한 김형민(27·가명)씨는 대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김씨는 지난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조건으로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이를 어기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 취업하면 그간 받은 2학기의 등록금 전액과 지원금 등 총 1,000만원가량을 뱉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의무조항은 그의 결심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대기업에 몇 개월만 다니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중소기업에 취직한 친구는 초봉이 2,500만원으로 월 실수령액이 190만원도 되지 않지만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는 매달 400만원 이상을 받고 있다”며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장학금 환수가 무서워 중소기업에 취직하겠느냐”고 되물었다.

20일 한국장학재단과 대학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한국장학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희망사다리Ⅰ유형’의 정식 명칭은 ‘중소기업 취업연계 장학금’으로 중견·중소기업 취업 희망자와 예비 창업자를 위해 마련됐다. 이 제도의 수혜자로 선정된 학생들은 최대 6학기의 등록금 전액은 물론 취업·창업지원금 200만원을 학기마다 함께 받을 수 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은 대학 졸업 후 의무적으로 매출액 2,000억원 미만의 중견·중소기업에 근무하거나 6개월 이상 약 67만원의 매출액을 내는 기업을 창업해야 한다. 의무종사 기간은 장학금을 받은 횟수에 따라 달라지는데 1회 받았을 경우에는 6개월, 2회 받았을 경우에는 1년으로 늘어나며 이를 지키지 않은 졸업생은 받은 장학금 전액을 한국장학재단에 돌려줘야 한다.

서울경제신문이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희망사다리Ⅰ유형’ 장학금을 받았으나 이 같은 의무규정을 지키지 않아 지난 5년간 장학금을 반납한 인원은 총 3,874명(중복 포함)으로 6년간 지원인원(1만8,022명)의 3분의1에 달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환수인원이 장학금 지원인원에 비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환수인원은 1,307명으로 환수 첫해인 2014년 대비 28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장학금 지원인원은 도입 첫해인 2013년 1,643명에서 2018년 4,611명으로 2.8배 증가에 그쳤다. 지원인원이 늘어난 점을 고려하더라도 환수인원이 10배나 증가한 셈이다. 지난해 장학금 지원인원이 2017년(4,152명)보다 늘어난 데다 올해 1학기에만 3,600명을 지원할 예정인 만큼 환수인원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환수를 선택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은 갈수록 커지는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1차 원인으로 지목한다. 희망사다리Ⅰ유형은 4년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의 경우 최대 4학기 동안, 5년제 대학은 최대 6학기 동안 장학금을 지원한다. 등록금과 지원금을 받은 학생이 의무규정을 어겼을 경우 돌려줘야 할 금액은 4학기 수혜학생이 약 2,000만원, 6학기가 약 3,000만원으로 적지 않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임금 격차를 고려하면 이 같은 환수금액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게 학생들의 생각이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만 모으면 만회할 수 있는 금액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임금 근로 일자리별 소득 결과’에 따르면 2017년 대기업 임금근로자의 월 평균소득은 488만원으로 전년보다 12만원(2.5%)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중소기업은 4.8%(10만원) 증가한 223만원에 그쳤다. 중소기업의 인상률이 대기업보다 2.3%포인트 컸음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2016년 263만원에서 2017년 265만으로 되레 커졌다. 이 같은 격차는 40~50대 외에 20~30대에서도 크게 나타났는데 20대의 경우 108만원, 30대는 227만원의 격차를 보였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하듯 취업준비생과 대학생 등이 모인 인터넷카페에서는 “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해 꼭 대기업을 못 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거나 “대기업을 못 갈 것 같은 경우에 신청하면 더욱 좋다” “대기업을 가고 싶은데 이미 장학금을 받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등의 내용이 담긴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소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회 초년생의 입장에서 그간 받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돌려주는 것은 큰 부담일 것”이라면서도 “지금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큰 상황에서 환수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굳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학생은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임금이 대기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다 연차가 쌓일수록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전액 환수라는 조건만으로 학생들을 중소기업으로 유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희망사다리Ⅰ유형의 취지가 퇴색된 가운데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처음으로 도입한 ‘희망사다리Ⅱ유형’도 난항을 겪고 있다. ‘고졸 후학습자 장학금’으로 불리는 희망사다리Ⅱ유형은 고등학교 졸업 후 중견·중소기업에 3년 이상 근무한 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경우 입학금을 포함한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장학금으로 청년 일자리 대책의 하나로 발표됐다. 이 장학금 역시 장학금 수혜 횟수만큼 중소기업에 재직해야 한다.

하지만 청년층보다는 중장년층의 신청이 쇄도하면서 이 같은 목적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신청자 9,626명 중 40세 이상~50세 미만이 1,753명으로 18.21%를 차지했으며, 50세 이상~60세 미만이 913명(9.48%), 60세 이상이 128명(1.33%)에 달해서다. 1월 중순까지 받은 올해 1학기 1차 신청에서도 9,000명의 목표인원 중 5,846명만이 신청하는 데 그쳤으며 이 중 34세 미만 청년층의 비중은 69%(4,035명)뿐이었다. 한 중소기업의 대표는 “중소기업의 고졸 출신 직원은 주로 생산직에서 근무하는데 교대근무와 야근·특근이 많아 대학을 병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먼저 중소기업의 현실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연하·하정연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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