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로 치면 별 한 개는 루크 스카이워커이고, 2스타는 오비완 케노비급이야. 하지만 3스타가 되면 요다인 거지.”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더 셰프(Burnt)’에서 미쉐린 2스타 셰프인 주인공 아담 존스(브래들리 쿠퍼)의 제자로 일하게 된 데이빗은 미쉐린이 대단한 거냐고 묻는 여자친구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미쉐린 별을 부여받은 셰프들을 공상과학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 기사(은하계의 평화를 지키는 초능력자)에 빗대 이들이 얼마나 능력 있는 권위자들인지 강조한 대목이다. 그에 따르면 3스타 셰프는 영화에서 800살이 넘은 제다이의 지도자 요다와 같다며 ‘최고 중에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미식계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미쉐린이 배출한 대표 스타 셰프로는 영국의 고든 램지(52)를 꼽을 수 있다. 가정형편 때문에 19세에 축구선수를 포기한 그는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와 알베르 루에게 혹독한 수업을 받으며 셰프를 꿈꿨다. 밑바닥에서부터 요리를 배운 그는 31세가 된 1998년 영국 첼시에 자신의 첫 가게인 ‘레스토랑 고든램지’를 연 지 3년 만에 미쉐린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았다.
미쉐린 최고 등급 레스토랑의 셰프라는 수식어는 램지에게 막강한 권력과 부를 안겨줬다. 2006년 음식 서비스 분야에서 대영제국 4급 훈장(OBE)까지 받은 그는 영국 왕실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램지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현재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은 35곳으로 늘었고, 그가 거느리는 셰프 수만도 700명에 달한다. 빼어난 요리에 ‘솔직한 입담’까지 갖춘 그에게 방송가의 러브콜도 쏟아진다. 약 30개의 음식 TV 쇼에 출연하며 몸값을 높인 그는 지난해 6,200만달러(693억원)의 재산을 축적해 셰프로는 유일하게 포브스 선정 상위 100위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레스토랑의 위치나 접근성, 주변 물가 등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쉐린 스타의 효과를 일괄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미쉐린 별 한 개만 받아도 두자릿수대 영업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램지의 스승이자 미쉐린가이드 별을 총 31개나 획득했던 ‘세기의 셰프’ 조엘 로부숑(1945~2018·프랑스)은 “별 한 개를 받으면 사업 규모가 20%, 두 개는 40%, 세 개라면 100%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는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쉐린 셰프가 되면 인재들도 알아서 몰려든다. 미쉐린 스타가 셰프의 능력을 보장해주는 지표가 되면서 유망한 젊은 요리사들이 미쉐린 스타 문하생이 되겠다며 줄을 선다. 2017년에 별 한 개를 받으며 미쉐린가이드에 오른 뉴욕 닉스(Nix)의 존 프레이저 셰프는 외식 매거진 ‘푸드앤와인’과의 인터뷰에서 “기존보다 더 뛰어난 직원들을 보유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미쉐린 스타가 셰프에게 막강한 권력과 부를 안겨주는 보증수표가 되면서 미쉐린 평가단은 외식 업계 최고의 귄위자로 부각됐다. 아무리 맛있다고 소문난 레스토랑이어도 미쉐린이 인정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맛집으로 공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쉐린이 새로운 도시 탐방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리면 해당 도시의 셰프들은 모두 긴장 모드에 돌입한다.
미쉐린 조사자는 국정원 요원을 방불케 할 만큼 철저히 비밀리에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탁과 같은 부정행위 없이 철저히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레스토랑을 예약할 때는 익명이나 가명으로 하고 결제 시 법인카드도 쓰지 않는다. 전공 분야가 아닌 음식을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 서로 다른 평가사가 함께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미쉐린가이드 영국·아일랜드편 저자이자 12년간 미쉐린 평가사로 일한 레베카 버는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평가사는 1년에 최소 레스토랑 275곳을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미쉐린가이드의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 보니 국가 간 미쉐린 모시기 전쟁도 벌어진다. 현재 미쉐린가이드북은 28종에 불과해 아직 미쉐린에 소개되지 못한 국가·도시들은 미쉐린가이드의 발간비용까지 부담하며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는 한국관광공사가 오류투성이 미쉐린가이드 제작에 혈세 20억원을 들이고 불공정계약까지 맺은 사실이 드러나 국내외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서울뿐만 아니라 미쉐린의 마카오·홍콩·방콕·싱가포르편도 각각 현지 정부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
미쉐린이 주는 권력은 셰프에게 상당한 압박이 되기도 한다. 미쉐린 평가사들이 맛에 변화가 있는지 불시에 검사하기 때문에 ‘미쉐린 맛집’ 문패를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외식 업계에서는 2003월 2월 프랑스의 천재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의 자살을 두고 자신의 레스토랑이 3스타에서 2스타로 강등될 것이라는 소문에 괴로워하던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지난해 프랑스의 유명 셰프 세바스티앵 브라는 18년간 3스타를 유지하기 위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며 자신의 레스토랑 ‘르 쉬케’를 ‘2018 미쉐린가이드 프랑스판’에서 삭제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미쉐린가이드는 최초로 일선 레스토랑의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고 르 쉬케를 명단에서 지웠다.
2008년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인도요리 레스토랑 ‘퀼론’의 수석 셰프 스리람 에일러는 “미쉐린 스타는 엄청난 영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고객들의 기대가 높아진 탓에 엄청난 압박감이 되기도 했다”면서 미쉐린을 ‘양날의 검’으로 평가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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