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진 증권부 차장
부동산투자회사(리츠)법이 제정된 지 만 18년이 흘렀지만 공모 리츠 시장의 성장은 더뎠다. 이런 상황에 변곡점이 될 만한 ‘빅 이벤트’가 이달 예정돼 있다. 홈플러스가 전국의 매장 51개를 담아 자산 규모 4조3,000억원, 공모금액 최소 1조5,000억원의 리츠를 만들어 공모에 나선다. 바야흐로 ‘조 단위’ 리츠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대규모의 ‘리테일’ 리츠라는 점에서 기대도 크고 우려도 없지 않다.
유통업은 부동산과 뗄 수 없는 관계다. 오프라인 유통매장의 성패는 입지에 달렸다. 이 때문에 전통적 유통 업체들에는 알짜 부동산 보유가 곧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선진국 유통사들은 일찌감치 리츠로 보유 부동산을 줄여왔고 온라인으로 유통업의 판세가 급격히 넘어가면서 이 같은 흐름은 가속화됐다. 유통사들은 리츠에 부동산을 넘겨 임대료를 내고 리츠 투자자들이 이를 배당으로 받아간다. 유통회사들도 안정적으로 임대계약을 맺을 수 있고 매각대금은 재투자에 활용한다. 투자자와 회사가 윈윈하는 구조다. 리츠 선진국에서 리테일 리츠의 비중이 높은 이유다.
부동산을 움켜쥐고 있던 국내 유통사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이랜드를 시작으로 이번에는 홈플러스 리츠, 이후에는 롯데가 대기하고 있다. 마땅한 리츠 상품의 기근에 시달리던 리츠 시장에는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해외 리테일 리츠의 동향을 보면 마냥 기대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주요 리츠 중 하나인 세리티지그로스프라퍼티는 지난 2015년 거대 유통체인인 시어스가 보유한 매장들을 담아 만든 리츠다. 시총 20억달러가 넘는 이 리츠는 올 들어 처음으로 배당 지급을 연기했다. 시어스가 리츠를 만든 지 3년 만에 파산 절차에 들어간 여파다. 미국 최대의 리테일 리츠인 사이먼프라퍼티그룹도 최근 “일부 임차 기업들이 우려된다”고 밝혔고 이는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우리보다 유통 트렌드가 앞선 미국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에 투자하는 리테일 리츠가 고전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매일 쇼핑하는 국내 개인투자자도 이런 판세 변화를 모를 리 없다. 리츠 공모를 앞두고 있는 국내 유통사들이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리츠 시장 도약의 기회가 빛이 바랠 수 있다.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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