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시흥에 자리한 부품 수출업체 B사 본사는 요즘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1차 협력사로 유럽·미국 지역 생산공장에 차량용 파스너를 납품하고 있는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440억원, 이 가운데 수출이 절반을 차지한다. 문제는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해외 판매 실적이 둔화되면서 해외로 납품하는 수출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완성차 업체가 비용 절감 차원에서 중국 시장에서 조달하는 부품을 현지 업체로부터 사들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면서 판로마저 막힐 위기에 처했다. 민중호(가명)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로 전체 인건비만 7% 이상 올랐지만 이를 수출 단가에 반영하면 기존에 있던 물량마저 해외 로컬 업체에 빼앗길 게 뻔해 손해를 감수하고 있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실제 B사의 주력 시장 중 한 곳인 터키·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는 현지 부품회사들이 유통회사 형태로 영업하고 있다. 직접 부품을 생산하기보다는 베트남 등 인건비가 저렴한 지역에서 제품을 들여와 국내 완성차 업체의 유럽법인을 상대로 영업을 벌이는 것이다. 민 대표는 “완성차 업체가 판매 실적이 좋지 않은 중국 시장에서까지 로컬 부품 조달을 실행할 경우 상당수 부품업체들이 줄도산할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비용은 크게 올랐지만 대외 여건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면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장탄식을 쏟아냈다.
아세안 시장에서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중소기업들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구라카키가고의 사례처럼 현재 일본 지방 도시에는 품질 경쟁력을 갖추면서도 인건비는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업체들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아베 신조 정부의 엔저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우리 중소기업들은 진퇴양난에 처했다. 경기도 안산 소재의 자동차 금형업체 C사 대표는 “2010년 초반만 해도 달러당 70~80엔까지 올라갔던 엔화 가치가 이제는 110~120엔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글로벌 금형 시장에서 일본 부품업체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인건비 부분에서는 한일 간 차이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유일하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던 것은 그나마 납기일이 빠르다는 것이었는데 이마저도 근로시간 단축이 도입되면서 빠른 속도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는 제조업체들의 사정은 더욱 나쁘다. 이들은 지난 2년간 급격하게 오른 인건비를 견디지 못하고 수출을 줄이거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미국·유럽 지역에 패션회사에 원단을 납품하는 섬유업체 D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20억원으로 수출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인건비 상승으로 제품 단가가 오르면서 수출을 하면 할수록 역마진이 발생하자 결국 수출 물량을 줄이는 최후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박진성(가명) 대표는 “수출 주력 제품인 원단을 만들려면 원사 생산업체와 염색 가공업체 등 하청업체의 도움이 절실한데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공급 단위별로 제품 단가가 15~20%씩 올랐다”면서 “결국 수지 타산을 맞추기 어려워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미국·유럽 등지에 의류 원단을 수출하는 중소기업들은 중국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중국은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재 가능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출액의 14%를 보조금으로 지원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수출 기업을 돕는데 우리는 정부가 오히려 수출 전선에서 싸우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에서는 인건비 상승을 중소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제품 혁신 등 기술 경쟁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렴한 인건비 과실만 따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중소기업들의 수출 경쟁력 하락은 제품 경쟁력이나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진 데 기인한 측면이 크다”면서 “중소기업은 신제품 개발이나 해외시장에 대한 분석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입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사자인 중소기업들의 의견은 다르다. 정부가 생산성 향상은 고려하지 않고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서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홍순영 한성대 특임교수는 “인건비 인상은 국내 모든 기업들의 수출과 가격 경쟁력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다”면서 “중소기업들은 결국 생산성 향상 등 다른 방식을 통해 인건비 부담을 흡수해야 하는데 스마트공장 보급이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정부의 보완책은 제때 나오지 못하면서 인건비만 급격하게 올라 그 갭(GAP)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서민우·심우일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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