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를 물고 있느라고 이빨이 금이 간 것 같다”고 말했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모습은 하루 새 편안해 보였다. 청년으로 돌아가 창업을 하겠다는 이 회장은 창업 아이템도 이미 생각해둔 듯 쏟아지는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29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단 초청 간담회에서 “창업 아이템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이 회장은 주저 없이 “플랫폼 사업이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창업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겠다고 이 회장은 밝혔다. 그는 “직접 회사를 차릴 수도 있고, 투자자로 나설 수도 있지만 CEO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창업 아이템을 꼽지는 않았지만 이 회장은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며 “앞으로 1년 정도 4차 산업 분야 인사들을 많이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천천히 공부하며 창업을 준비하겠다”며 “창업 시기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1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4세 승계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쳤다. 언제 외아들인 이규호 전무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나중에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돼야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며 “나는 기회를 주는 거다. (아들은) 현재 주요 회사 지분도 전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이 전무에 대한 아버지로서 애정과 신뢰는 아끼지 않았다. 이 회장은 “아들에게 스스로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아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사퇴 후 경영권 관여와 관련해 이 회장은 단호했다. 그는 “국내에 있으면 이래저래 나를 찾을 것 같아서 당분간 해외에 나가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고 이동찬 회장)한테 물려받고 나서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경영상의 지시도 없었다. 처음 인사를 들고 여쭤보러 갔더니 안 본다고 하셔서 혼자 처리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주주로서의 책임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정말 잘 못할 때, 피치 못할 때 대주주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 CEO들은 이미 미래에 대해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와서 경험이 많다. 오히려 내가 없으면 더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퇴임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본인의 변화 속도가 느려 회사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3년 전부터 퇴임을 생각했고 지금이 떠날 때라고 결심해 서둘렀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주주로서 봤을 때 현 경영진이 코오롱을 이끌면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주주로서 권한 행사를 안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본인이 오히려 회사에 걸림돌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퇴임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무노동·무임금을 관철하려다 노조와 충돌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지금은 격 없이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노조와 친해졌다고 했다. 그는 “노조도 지금은 99% 열심히 상생해보자고 한다”며 “일터의 주인은 직원들”이라고 강조했다./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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