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강원도 양양에서 시작된 스타트업 ‘라온서피 리조트’는 낙산사와 몇몇 해수욕장에 머물던 양양의 관광지에 ‘서피비치’를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2004년 처음으로 서핑을 접한 뒤 국내에 서핑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힘쓰던 이형주 대표는 하조대 근처에 자리한 군사 제한 구역을 찾아냈고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와의 협력 끝에 국내 최초 서핑 전용 해수욕장인 서피비치를 오픈했다. 서피비치에 대한 청년층의 반응은 뜨거웠고, 오픈 이후 매년 3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가 돼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한종호 강원혁신센터장은 “테크창업 외에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들을 만들어내는 생활문화형 창업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라온서피 리조트도 그 중 하나로 올해 말까지 센터가 선발할 기업이 100팀에 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설립 5년차를 맞은 창조경제혁신센터가 혁신창업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자율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개편된 이후 지역 혁신창업 허브로 작동하면서 지역 경제 살리기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처음 만들어진 혁신센터는 창업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벤처창업생태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것을 목표로 설치됐다. 현재는 수도권을 포함해 강원·경북·대구·울산·부산·경남·전남 등 총 17개 지역에 19개 혁신센터가 설치돼있다. 정부는 혁신센터별로 전담 대기업을 두고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1대1 매칭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까지 전국의 혁신센터가 육성한 창업기업은 2,670개사에 달한다. 또한 총 7,736억원의 투자 유치를 받았고 3,189개의 중소기업에 기술·판로지원을 하는 등 성과를 냈다. 특히 강원혁신센터의 ‘디노먼트’와 대전혁신센터의 ‘시리우스’, 충남혁신센터의 ‘지텐션’은 각각 전자책 전문기업 리디와 코스닥 상장사 트루윈, 대기업 한화S&C에 인수합병(M&A) 되는 등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난 2월 ‘다양성·개방성·자율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혁신센터를 개편했다. 정부와 대기업 주도에서 벗어나 지역의 중견·중소기업과 대학, 공공기관, 벤처캐피털(VC) 등 다양한 파트너와의 협업을 확대해 지역 자생적인 창업생태계를 만들자는 목표에서다.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은 “개편 전에는 지역별 특화산업을 선정한 뒤 육성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개편 이후로는 구체적인 성과보다는 스타트업 출자나 다양한 파트너 생태계 등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과거에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성과로 이어질지 장담하지 못할 경우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부가 다양성 등을 선언한 뒤로는 그런 우려가 덜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영준 전남창조경제혁신센터장도 “센터가 개방성과 자율성·다양성을 바탕으로 지역의 창업가와 지자체를 돕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소신껏 하라고 중기부가 요청했다”며 “보다 창의적으로 일을 하자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센터 자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고 민간의 참여 의욕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19개 센터는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등 특화 영역에 맞춘 역할 강화에 나서고 있다. 농수산식품 분야의 스타트업·중소기업의 유통·판로 개척에 강점을 보유한 전남혁신센터는 기존 대기업 파트너인 GS 외에 농협하나로유통과도 협업을 시작했다. 현재 29명의 혁신센터 직원 중 8명이 GS칼텍스와 GS리테일, GS홈쇼핑, 농협하나로유통에서 파견된 이들일 정도로 끈끈한 협업을 자랑한다. 덕분에 지난 2015~2017년 559억원이었던 농수축산식품 판로지원 매출액은 올해에만 512억원(10월 기준)을 기록하는 등 급격한 상승세를 보였고 지난 21일 매출액 1,000억원 달성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를 갖기도 했다.
안전산업 등을 특화영역으로 내세우고 있는 울산혁신센터는 올해부터 울산에 자리한 안전보건공단과 안전분야와 관련된 스타트업을 공동 발굴·보육하고 있다. 공모를 거쳐 선정한 스타트업은 총 10개로 센터는 이들을 집중 육성한 뒤 이들이 가진 신기술을 필요로 하는 수요기업을 매칭할 방침이다. 스타트업에게는 판로를, 기업에게는 보다 안전한 산업현장을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이미 105개의 수요기업을 확보했다. 10개 기업 중 1개 기업이 6억원의 투자유치에 성공하는 등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강원혁신센터는 라온서피 리조트와 같이 지역 생활문화에 기초를 둔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사업화해 지역에 정착하려는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데 힘쓰고 있다. 이렇게 발굴한 청년 창업가들을 ‘청년혁신가’로 지정, 일정 기간 보육 후 사업화를 지원하는 식이다. 강원혁신센터는 지역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이 수도권 중심의 벤처캐피털(VC) 등으로부터 소외 받는 점을 고려, 조만간 5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이들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운용사(GP)로서의 역할도 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제주혁신센터는 올해 처음으로 시드머니 투자사업을 통해 직접 보육기업 투자에 참여하는 등 지역의 열악한 투자 생태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수도권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는 유망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으로, 과일나무 멤버십 서비스를 운영하는 ‘당신의과수원’과 제주지역 빈집을 리모델링해 숙박시설로 활용하는 ‘다자요’ 등 2곳을 선정하기도 했다.
/김연하·심우일기자 yeo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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