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말 금융당국이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제도를 도입한 뒤 만들어진 국내 1호 사모펀드 이름은 ‘우리 PEF’였다. 2005년 우리금융지주의 8번째 자회사로 설립된 우리프라이빗에쿼티가 운용하는 블라인드 펀드였다. 3,440억원 규모로 시작한 우리PE는 2009년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과 6,061억원 규모의 2호 블라인드 펀드를 만들며 몸집을 키웠다. 2호 펀드가 아이마켓코리아, NS홈쇼핑, 현대로지스틱스 등에 투자해 거둔 수익률은 13.2%에 달한다. 규모가 5,000억원이 넘는 블라인드 펀드 중 청산할 때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를 찾기가 쉽지 않다.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던 우리PE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14년. 행장 교체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 1년에 한번 꼴로 대표이사가 교체됐고 PE를 이끌던 핵심 인력도 줄줄이 빠져나갔다. 이렇다 보니 2009년을 끝으로 블라인드 펀드 조성 실적조차 없는 상황. 같은 기간 전체 PEF의 약정액이 두 배 넘게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시중은행 유일 ‘PE 하우스’란 이름이 무색했다.
우리PE가 명가(名家) 재건을 위한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 것은 김경우 대표가 취임한 이후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 MBA 과정을 거친 김 대표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JP모건과 모건스탠리 등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하며 실력을 키웠다. 노무라증권 홍콩법인 본부장으로 재직하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의 부름을 받고 지난 4월부터 우리PE를 이끌고 있다.
김 대표의 취임 첫 행보는 밀린 성공보수 지급과 성과보상체계 개편이었다. 25일 서울경제 시그널과 만난 김 대표는 “지난해 말 2호와 3호펀드 청산으로 수익이 생겼음에도 여러 이유로 성공보수 지급이 미뤄지고 있었는데, 그걸 지급하는 일을 가장 먼저 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과 보상체계를 PEF 운용 특성에 맞게끔 바꾼 일도 김 대표가 일궈낸 성과다.
그는 “로컬 PE를 글로벌 PE와 견줘보면 가장 개선이 시급한 부분이 바로 성과급”이라며 “‘리스크 어벌스(risk-averse)’인 은행과 달리 PE는 ‘리스크 테이커(risk-taker)’인 만큼 역동성을 살릴 수 있는 체계가 뒷받침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성과는 당장 나왔다. 우선 떠났던 핵심 운용인력이 돌아왔다. 2호 펀드 운용을 주도하다 CJ대한통운으로 옮겼던 이병헌 본부장이 다시 돌아와 투자본부를 이끌고 있다. 조직이 옛 모습을 찾아가면서 근 10년 만에 블라인드 펀드 조성도 목전에 두고 있다. 우리PE는 지난 9월 신영증권과 공동운용사로 참여한 성장지원펀드에서 ‘그로쓰캡’(Growth-Cap) 위탁운용사로 선정됐다. 이달엔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 조성하는 기업구조혁신펀드 블라인드 운용사 운용사로 선정됐다. 김 대표는 “올해 안에, 늦어도 내년 1월 초까지는 3,300~3,400억원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를 론칭할 계획”이라며 “우리은행이라는 신뢰도 있는 브랜드가 있는 만큼 벌써 제안서가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블라인드 펀드를 조성하는 동시에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를 통해 새 먹거리를 마련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우리PE는 김 대표 취임 이후 해외 대체투자뿐만 아니라 인수금융 분야까지 투자 영역을 넓힌 상황이다.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 약정액만 5,966억원, 해외 자산을 타깃으로 한 펀드는 약정액이 2,127억원. 곧 조성된 블라인드 펀드를 포함하면 운용자산(AUM)이 1조1,000억원을 돌파하게 되는 셈이다.
김 대표는 멀게는 선진 금융시장에서처럼 PEF가 직접 기업에 대출을 해주는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비전도 내놨다. 그는 “반드시 고객이 에쿼티 파이낸싱(equtiy financing)만 필요한 게 아닐 수 있다. 대출이 필요한 이도 있을 수 있고, 은행이 커버해줄 수 없는 부분을 PE가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경기가 하강하는 국면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처럼 PE가 지분투자(equity)뿐만 아니라 부채(debt)나 신용(credit)까지 여러 상품을 가지고 있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박시진·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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