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몸의 양식이듯 책은 영혼의 양식이다. 그런데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는 성인의 비율)은 59.9%로 역대 최저다. 우리 영혼이 굶기를 밥 먹듯 한다는 얘기다. ‘마음의 영양실조’가 우려되는 현실이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올해 ‘책의 해’를 보내면서 독서 대중화를 위해 씨스타의 보라, 마마무 등 아이돌 스타와 배우들의 서재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책을 사랑하는 걸그룹 모모랜드다. 제인·데이지·낸시·태하·나윤·혜빈·연우 등 멤버들이 직접 읽고 권하는 책들이 하나같이 짱짱하다. ‘모모랜드의 서재’에 함께 들어가 보자.
지난달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MLD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모모랜드는 책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책을 대하는 그 진지함에서 서너 살 꼬마부터 중년의 ‘아재들’까지 모두에게 사랑받는 모모랜드의 건강하고 밝은 아름다움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멤버들은 하나같이 온갖 역경에도 끝까지 자신들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힘 가운데 하나로 내적 역량을 쌓게 해준 독서를 꼽았다. “연습생 시절에는 학교 공부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휘력도 키우게 되고, 지식도 많이 얻게 됐던 것 같아요. 또 책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세계가 들어 있어요.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판타지까지 다 있죠. 때론 책을 통해 현실에서 벗어나면 불안하고 힘들 때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종이책 예찬 또한 각별했다. “데뷔 후 정말 바빠져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데다, 이동하면서 읽는 데는 종이책이 편해요. 종이 책에 쓰인 문자가 훨씬 눈에 잘 들어오고, 집중도 잘 되고, 따뜻한 느낌도 좋고, ‘삭삭’ ‘사그락 사그락’ 책 넘기는 소리가 따뜻해서 좋아요. 일정 마치고 밤에 누워서 종이 책 보면 힐링이 돼요.”
데뷔 3년 차인 모모랜드는 ‘여자 방탄’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대단한 K팝 기록 제조기다. ‘뿜뿜’으로 유튜브에서 세계인이 가장 많이 시청한 ‘K팝 안무’ 1위에 오른 모모랜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올해 발표한 ‘뿜뿜’ 안무 영상이 무려 1억2,000만 뷰를 기록해, 2위 블랙핑크의 ‘뚜두뚜두‘ 3위 빅뱅의 ’BANG BANG BANG‘를 제치고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 여세를 몰아 일찌감치 ‘올해의 아이돌’ ‘올해의 걸그룹’으로 꼽히고 있는 모모랜드다.
이처럼 몸이 바쁜 모모랜드지만 틈나는 대로 온라인 서점을 비롯해 오프라인 서점, 중고서점을 찾는 멤버들이 있을 정도로 책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소설부터 시집, 에세이, 자기계발서, 영어 원서 등을 멤버 개개인의 취향을 담아 소개했다. ‘걸크러쉬’ 리더 혜빈은 ‘리더의 격’을 꺼내 들며 “공감 또는 힘을 얻지 못해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편인데, 멤버 주이가 생일 선물로 줘서 읽게 됐다”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될 때 나름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스럽고 사랑스러운 연우는 따뜻한 감수성이 물씬 풍기는 ‘고양이는 안는 것’을 추천했다. “외로운 고양이와 사람이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그러면서 그는 “책을 읽는 것보다 사는 것을 더 좋아한다”며 “특히 중고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하고,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알랭 드 보통의 책이나, 사랑, 일상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었던 것 같다”고 덧붙이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태하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인 하상욱의 ‘서울시’를 소개했다. “하상욱의 시는 간결하면서 웃기게 풀었는데, 그 뜻은 깊은 것 같아요. 짧은 글귀를 통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아요. ‘시 읽는 밤 : 시 밤’도 읽었어요.” 제인은 국내에서만 판매량 10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추천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생각이 든 건 이 책이 처음이에요. 복선을 뿌려 놓고 회수하는 방식이 너무나 신기했어요.” 여운이 남는 소설을 좋아한다는 나윤의 선택은 한국 소설 ‘빽넘버’였다. “주인공은 다른 사람이 얼마나 살 수 있을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친구가 사고를 당했는데 그 후 얼마나 살 수 있는지가 보여서 괴로워해요.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죠.”
동화 속 상큼한 주인공 같은 데이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의미 있는 책으로 꼽았다. “어렸을 때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면서 그리고 제가 살아온 시기마다 해석이 달라지더라고요. 책에는 말장난도 많고, 허상의 세계잖아요. 이것들이 상상력을 자극하게 하고, 이상한 나라를 제 머리 속에 그리는 재미도 있어요. 또 무엇보다 억지로 보여주는 교훈은 없는 게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모모랜드의 막내이자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낸시는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영어 원서인 ‘더 폴트 인 아워 스타즈(The Fault in Our Stars)’를 들고 나왔다. “이 책은 ‘안녕, 헤이즐’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어요. 여자 주인공 헤이즐은 암에 걸렸는데, 한 모임에서 어거스터스와 첫눈에 반해서 사랑에 빠져요. 여자가 먼저 죽을 것 같은데 반전으로 남자가 먼저 세상을 떠요. 어린 나이에 사랑을 하는 게 귀엽기도 하고, 저는 소설을 읽으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데 이 책은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됐어요.”
모모랜드에게는 책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책에 대한 흥미롭고 따뜻한 에피소드도 넘쳐났다. 데이지와 제인은 중학교 때 CA 활동으로 독서부를 택할 정도로 책이 좋았다. “데이지랑 저는 독서부에서 활동을 했어요. 도서관에서 책 정리도 했고요, 이런 활동으로 봉사활동을 채우기도 했어요.” 제인은 “친구들과 함께 집에 있는 책을 모아서 새로 생긴 도서관에 책을 기부한 적도 있다”고 했다. 연우는 “어렸을 때는 독후감 대회에 나가서 상금 50만원 받기도 했다”는 얘길 들려줬다. 낸시는 한국어가 서툴렀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한국말을 못하는 저에게 선생님께서 카스테라에 관한 책을 빌려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깜빡하고 그 책을 못 돌려 드렸어요. 하근희 선생님 너무 감사하고, 보고 싶어요.” 태하는 만화책방에 관한 ‘웃픈’ 이야기를 들려줬다. “숙소 앞에 만화책방이 있었는데, 정액제로 한 달을 끊어서 봤는데, 10일 만에 가게가 없어졌어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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