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영화축제인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엿새 앞으로 다가왔다. 부산 해운대와 남포동 일대에서 다음 달 4~13일 열리는 이번 축제는 79개국, 323편의 초청작으로 지난해보다 볼거리도 더욱 풍성해졌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파행을 겪었던 영화제가 올해 정상 궤도로 돌아가면서 예년보다 짧은 준비기간에도 영화인들의 참여가 더욱 적극적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올해 역시 세계 3대 영화제를 달궜던 화제작과 거장 감독들의 신작들이 부산의 스크린과 무대를 채운다. 또 6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이나영이 탈북여성으로 열연하는 개막작은 물론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는 배우 추상미를 포함,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한국 여성감독들의 신작도 눈길을 끈다.
①돌아온 거장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거장들의 신작을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자리다.
중국을 대표하는 장이머우 감독과 지아장커 감독이 나란히 이번 영화제에서 신작을 선뵌다. 장이머우 감독의 ‘무영자’는 진짜를 넘어서려는 대역의 욕망을 대담한 비주얼로 표현한 작품이다. 또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애쉬’는 15년간에 걸친 깡패와 한 여인 간의 폭력으로 얼룩진 러브스토리를 그린다.
다큐멘터리 형식 실험에 나선 대만 차이밍량 감독의 ‘너의 얼굴’도 기대작이다. 차이밍량은 13명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사랑, 상실, 어둠과 빛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누벨바그의 거장 장뤼크 고다르의 신작 ‘이미지 북’과 이탈리아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도그맨’ 이란의 자파르 하나히 감독의 ‘3개의 얼굴들’ 라스 폰트리에 감독의 ‘살인마 잭의 집’도 부산의 스크린을 채운다. 디지털 시대의 영화와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이미지 북’은 사진, 회화, 텍스트 등의 파편과 분절, 지연과 반복, 멈춤과 연속을 통해 이미지 자체로 말하게 하는 일종의 실험 영화며 ‘도그맨’은 거칠고 폭력적인 남자와 종속적 관계에 얽매여 있는 소심한 남자의 고난을 그린 블랙코메디다. 이밖에 캐나다의 거장 드니 아르캉의 ‘미제국의 추락’ 다큐멘터리계의 영원한 반항아 마이클 무어의 코믹 다큐멘터리 ‘화씨 11/9’, 칸 영화제와 넷플릭스의 갈등으로 더욱 화제가 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 멕시코 예술영화의 선봉장 카를로스 레이가다스의 ‘우리의 시간’ 등도 빼놓지 말아야 할 필람 목록이다.
필리핀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만들어온 거장들도 대거 소개한다. ‘시민 제이크’의 마이크 데 레온, ‘사랑의 시그널’의 치토 S. 로뇨, ‘알파’의 브릴란테 멘도자, 그리고 라브 디아즈, 브릴란테 멘도자, 키들랏 타히믹 등 필리핀을 대표하는 감독이 의기투합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락바얀, 민중들의 행진’ 등이 아직은 낯선 서남아시아 영화의 진가를 증명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부산클래식도 눈길을 끈다. 신작은 아니지만 영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13편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작품은 거장 오손 웰즈의 미완성 유작으로 최근 완성되며 베니스영화에서 첫선을 보인 ‘바람의 저편’으로 아시아 최초 공개한다. 또 지난 4월 타계한 체코의 거장 밀로시 포먼과 비토리오 타비아니를 추모하는 특별상영도 준비돼 있다.
②세계 3대 영화제 명작 총출동
일반 관객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손 꼽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인 영화제를 달궜던 따끈따끈한 수상작들을 가장 빠르게 즐길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시네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단연 기대를 모으는 작품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인 ‘퍼스트 맨’이다. ‘퍼스트 맨’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1930~2012)의 전기 영화다.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 감독과 배우 라이언 고즐링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미국의 거장 오선 웰스의 미완성 유작으로 최근 완성돼 베니스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바람의 저편’도 이번 영화제 기간 아시아 최초로 공개된다.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인 영화 ‘가버나움’도 소개한다. 레바논 베이루트 슬럼가를 배경으로 부모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12살 소년을 통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가혹한 현실을 그린 작품으로 나딘 라바키 감독이 연출했다. 이밖에 감독상 수상작인 ‘콜드워’ 황금 카메라상 수상작인 ‘걸’등도 빼놓지 말아야 할 작품 리스트에 든다.
아시아 영화의 미래를 확인하는 와이드 앵글 섹션에서는 칸, 베니스, 로카르노 등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한 단편도 소개한다. 천재 사진작가 렌항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렌항을 위하여’ 지난밤 벌어진 총격으로 학교에 못 가게 된 초등학생 아이의 시선이 흥미로운 ‘꼬마 누레’ 무뚝뚝한 모녀 사이를 악몽으로 매개하는 ‘엄마와 딸과 악몽’ 등이 주목할만하다.
③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조류 만드는 한국영화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작부터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조망하는 뉴커런츠 부문까지 한국영화, 나아가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조류를 가늠할 수 있는 수작들이 대거 초청됐다.
개막작인 윤재호 감독의 ‘뷰티풀 데이즈’는 한 탈북여성이 14년 만에 아들과 재회에 나서는 과정을 그린다. 배우 이나영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탈북민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 드라마이자 가족해체와 가족의 복원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비추는 휴먼 드라마다. 윤재호 감독은 단편 ‘히치하이커’로 칸 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고 다큐멘터리 ‘마담B’로 모스크바영화제와 취리히 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멘터리상을 받을 정도로 단편과 다큐멘터리로 두각을 드러냈던 감독으로 이번 영화는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한·중·일 대표 영화를 선보이는 갈라프레젠테이션에서 ‘춘몽’의 장률 감독이 신작 ‘군산 : 거위를 노래하다’를 소개한다. 갑자기 군산 여행을 가게 된 남녀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로, 문소리·박해일·정진영·박소담·문숙·명계남·윤제문·정은채·한예리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뉴커런츠와 비전, 쇼케이스 부문에서는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선희와 슬기’(박영주 감독), ‘벌새’(김보라)는 10대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녀들의 성장을 그린다. 또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서는 고시생 자영을 주인공으로 한 ‘아워바디’(한가람)로 삶의 의욕을 잃어가던 한 여성이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과의 만남의 통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밖에 배우이자 감독인 추상미는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선보인다. 1951년 폴란드로 간 1,500여 명의 한국전쟁 고아의 가슴 뭉클한 실화를 담았다.
④이나영·야기라 유야 등 별이 빛나는 축제
개막작 주연 배우인 이나영을 비롯해 국내외 영화계를 빛내는 별들이 축제 현장을 찾는다. 이나영은 4일 개막식에 이어 5일 해운대 비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오픈 토크에 참석한다.
‘도그맨’으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마르첼로 폰테,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사코 I&II’ 남녀 주연인 가라타 에리카와 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비롯해 칸의 스타들도 부산행 티켓을 끊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으로 칸의 레드 카펫을 밟았던 유아인과 전종서도 6일 열리는 오픈 토크에서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을 나눌 예정이다. 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로 칸 영화제 역사상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일본 배우 야기라 유야는 뉴커런츠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되는 ‘여명’으로 한국 관객을 만난다.
감독들의 방문도 줄을 잇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늑대소년’(2012) ‘괴물의 아이’(2015)로 유명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신작 ‘미래의 미라이’와 함께 부산을 찾는다. 올해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공식 초청을 받은 작품이다. 또 아시아 뉴웨이브 거장으로, 부산영화제 단골인 대만 차이밍량 감독도 신작 ‘너의 얼굴’을 들고 관객과 만난다. 이밖에 홍콩의 관진펑 감독이 라이벌 관계였던 두 스타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신작 ‘초연’을 선보인다. 특히 주연 배우인 중국 톱스타 바이바이허가 함께 방문하기로 했다.
⑤정상화 원년…관객 참여 확대로 영화제 위상 회복
2014년이후 정치적 풍파를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그간 이어졌던 진통을 끝내고 올해 정상화의 원년을 선포했다. 정상화에 나서면서 가장 힘을 쏟은 부분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결합, 관객 체험 프로그램 확대다.
이번 축제기간 부산영화체험박물관, 모퉁이극장, 퍼니콘,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시청자미디어센터 등이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의 주체가 되어 축제를 프로그래밍하고 영상과 공연 콘텐츠를 선보이는 ‘커뮤니티 BIFF’를 선보인다. 장소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태동지이자 원도심인 중구 일원으로 프린지 페스티벌 성격의 행사를 통해 원도심 부흥은 물론 축제와 지역의 연계성 강화에 나선다.
영화인들의 네트워킹 지원에도 적극 나선다. 아시아독립영화인들의 공동성장 네트워크 플랫폼 부산(10.6-9)을 통해 25개국 178명의 영화인이 교류한다. 이들은 나흘간 이창동 감독의 ‘버닝’ 제작기를 들어보는 ‘필름메이커 토크 : 이창동’ 할리우드 공포물 명가 블룸하우스의 제이슨 블룸을 직접 만나보는 ‘프로듀서 토크 : 제이슨 블룸’ 호주 감독 패트릭 휴즈의 액션 시퀀스 제작기를 공유하는 ‘밋 더 필름메이커 : 패트릭 휴즈; 긍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사진제공=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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