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무역전쟁 대응책으로 강온 양면전략을 활용해온 중국이 점차 맞보복 강경책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압박에 한발 두 발 양보하면 자칫 중국의 굴기 전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중국 지도부의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주요2개국(G2)으로 자리매김하려면 결국 미국과 한판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중국의 전 재정부장(재무장관) 출신인 러우지웨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외사위원회 주임(장관급)이 베이징에서 열린 발전고위층 포럼에서 중국이 미국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수출규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 같은 중국 지도부 내의 태도 변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포럼 주제발표에서 “미국 제조업의 공급사슬망에서 핵심 중간재와 원자재, 부품 수출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미국에 타격을 주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규제 대상과 방법까지 거론했다.
러우 주임은 자신의 주장이 정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가 중국의 대표적 정책토론 기관인 정협 외무담당 최고책임자를 맡고 있는데다 전직 재무장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 지도부 내에 이 같은 기류가 이미 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러우 주임은 “핵심 중간재 등의 미국 제조업 주요부품 수출을 끊으면 미국이 대체재를 찾는 데까지 적어도 3∼5년이 걸릴 것”이라며 수출규제나 비관세장벽 등이 강화되면 미국도 결국 대중 압박의 태도를 바꿀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대미 중간재 수출 규제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크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대미 중간재 수출을 중단할 경우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이 큰 대만·한국·일본·독일 등에 피해가 예상된다”며 “한국은 대중 수출에서 중간재 비중이 대만(79.9%)에 이어 두 번째(78.9%)로 높아 피해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가에서는 미국의 무역협상 초청에 대한 거부 움직임도 일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2,000억달러 중국 수입제품 추가 관세 부과가 공식화되면 중국이 오는 27~28일 워싱턴에서 열릴 예정인 고위급 미중 무역협상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해 “머리에 총을 겨누는 상대와는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중 무역전쟁과 관련해 한동안 민감한 주장을 자제해온 관영매체들도 “미국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다”는 격한 표현으로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7일 사설에서 “미국이 일방적인 패권주의 태도를 보이면 중국은 강력한 반격에 나설 것”이라며 “미국의 압박이 클수록 반작용 역시 클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미중 무역협상 결렬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17일 중국 증시에서 상하이종합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11% 하락, 2014년 11월 이후 최저치인 2,651.79로 거래를 마쳤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양철민기자 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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