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옥천에 사는 50대 여성 B씨는 지난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로 여행을 다녀온 뒤 고열과 기침 증세로 대전의 한 종합병원을 찾았다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의심환자로 분류돼 격리돼 검사를 받았다. 체온이 39.3도까지 치솟고 기침도 심한 상태였다. 하지만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MERS-CoV)’ 특이적인 유전자가 있는지 검사한 결과 독감(인플루엔자)으로 판명 났다.
3년 만에 국내에 메르스 환자(61세 남성 A씨)가 발생했지만 메르스 의심환자 중에는 독감이나 감기 판정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9~10월은 독감이 유행하지 않지만 해외여행객이 많다 보니 B씨처럼 동남아 등 아열대 지역, 중동 등에서 독감·감기에 걸려 입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메르스 의심환자 220명(외국인 50명 포함) 중 66%인 145명에서 독감·감기 등 급성 호흡기감염증을 일으키는 다른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독감 바이러스가 73명, 감기·기관지염 등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55명(리노 25명, 인간메타뉴모 11명, 아데노·인간코로나 각 7명, 파라인플루엔자 5명), 둘 이상의 병원체가 17명에서 나왔다.
여행국은 UAE 136명(55%), 사우디아라비아 39명(16%), 이스라엘 17명(7%), 카타르 13명(5%), 이란 10명(4%), 요르단·쿠웨이트 각 7명(3%) 순이었다. 시기적으로는 독감이 유행한 12월이 36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우디 성지순례자들이 입국한 9월이 27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해 해외에서 발생한 메르스 환자는 250명(사우디 238명, UAE 6명, 카타르·오만 각 3명)이었으며 이 중 80명(사우디 79명, UAE 1명)이 사망했다.
독감은 백신 예방접종으로 70~90% 예방할 수 있다. 반면 리노·코로나 등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200여종이 넘고 변이가 자주 발생해 확실한 예방약이나 처치약이 없다. 증상을 완화해주는 약이 있을 뿐이다. 메르스도 같은 처지다.
메르스는 메르스-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낙타나 메르스 환자의 비말(침방울 등)과 접촉, 생낙타유, 덜 익힌 낙타고기 섭취 등을 통해 감염된다. 이 바이러스는 2012년 인체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단봉낙타가 감염원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독일감염연구센터(DZIF)가 중동에서 단봉낙타 1,000여마리를 조사했더니 6%에서 인체 감염이 흔한 코로나바이러스(HCoV-229E)가 검출된 것이다. 다행히 인체의 면역체계가 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대항 능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서인지 메르스는 낙타와 사람 간 전염이 1차 발생한 뒤 병원 등의 제한된 구역에서 밀접접촉한 사람 간에 2차 전염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일반 독감·감기처럼 광범위하고 일상적으로 사람 간 감염을 일으키지는 않고 있다.
메르스와 독감을 증상만으로 구별하기는 어렵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둘 다 급성호흡기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열, 기침, 콧물, 목 아픔 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며 “그래서 최근 2주 안에 메르스(잠복기 2~14일)가 유행하는 중동국가를 다녀온 적이 있는지의 역학적 연관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메르스 환자의 3분의1가량은 A씨처럼 설사를 하는 등 소화기 증상이 있다. 하지만 독감 환자도 특히 어린이에서 20~30%가 메스껍고 토하거나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는 소화기 증상이 있다. 빈도는 낮지만 성인에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다만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김연재 국립중앙의료원 감염관리팀 전문의(감염내과)는 “증상이 비슷하지만 주로 감염되는 부위가 독감은 상기도(上氣道), 메르스는 하기도(下氣道)로 차이가 난다”며 “그래서 메르스는 폐렴·설사나 콩팥·심장 기능장애 등 전신증상을 일으킬 위험과 치명률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메르스는 심장·콩팥·폐·면역질환이나 당뇨병 등 기저질환이 있거나 임신부·고령자·어린이, 면역기능 저하자가 감염되면 예후가 좋지 않다. 치명률은 국가에 따라 20∼46%에 이른다. 3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환자 186명 중 38명이 입원 30일 내 사망해 20.4%의 치명률을 보였다. 환자들의 잠복기는 평균 6.83일이었다.
그동안 메르스 환자의 증상 가운데 고열·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부각됐다. 하지만 A씨의 사례에서 확인됐듯이 설사가 주된 증상인 경우도 등장했다. 김 교수는 “A씨처럼 나이가 많거나 설사로 탈수 증세가 있으면 면역기능이 떨어져 열이 많이 안 날 수 있다”며 “또 사람의 정상 체온은 36.7도지만 아침에는 이보다 낮고 저녁에는 올라가는 등 하루 중 0.7~1도까지 오르내리기 때문에 A씨가 입국 전 해열제를 먹지 않았더라도 공항 검역대 발열감지기를 무사히 통과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병원에서 수액주사를 맞고 수분을 충분히 공급받으면 몸속에서 면역 시스템이 활성화돼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열이 날 수 있다.
메르스 예방법의 기본은 물과 비누로 손을 자주 씻고 씻지 않은 손으로 눈·코·입을 만지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전염시키지 않으려면 기침·재채기를 할 경우 옷소매로 입·코를 가리고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마스크를 낀다. 독감·감기 등과 비슷하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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