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 한 채 마련하려면 평균적인 소득 수준을 지닌 신혼부부가 9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단다. 한숨만 나오는 저 아득한 시간 앞에 오늘도 청춘은 고개를 숙인다.
‘내 집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집입니다’는 32년째 세입자로 살고 있는 젊은 작가의 수필집이다. 저자 박윤선은 서울경제신문에 재직 중인 7년 차 기자로 ‘집순’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써 ‘제5회 브런치북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은 뒤 이 책을 출간했다.
32년 동안 열다섯 번이나 거처를 옮긴 저자는 3~5쪽의 짧은 수필 50여편을 통해 집과 이사에 얽힌 추억들을 차례차례 소환한다. 20대 초반 고시원에 살며 씻어도 개운치 않은 공용 화장실을 썼던 기억도 있고, 엄마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보증금을 날린 일화도 등장한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저자의 건강하고 따뜻한 시선 덕분에 행간에는 낙관과 긍정의 기운이 가득하고 흐뭇한 위트도 끊이지 않는다. ‘누가 누가 더 나쁜 집에 살아봤나’를 놓고 친구들과 일합을 겨룬 ‘무용담 배틀’은 배꼽 잡는 웃음을 안기고, ‘1인 가구’라는 용어의 의미를 평가하는 대목은 잘 벼린 칼처럼 예리하고 날카롭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심히 지나칠 사소한 일상의 장면을 포착하는 저자의 사려 깊은 관찰력은 집을 매개로 삶과 인생의 의미를 깨우치는 작은 통찰에 이른다. 이사를 하면서 저자는 ‘버려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을 구분하고 짐을 싸면서 ‘내가 짊어질 수 있는 것만이 내 삶’이라고 속삭인다. 독립된 에피소드들은 그저 나열되는 대신 차곡차곡 쌓이고 모이면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돌이켜보면 열다섯 번의 이사는 결국, 사는 것과 사는 곳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 아니었을까. 삶이 있어야 집이 있고, 집이 있는 곳에 삶도 있다는 사실. 이 책은 바로 그 깨달음으로 가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기록이다. (중략) 한 번쯤은 말하고 싶었다. 지금 여기, 보통의 삶은 이런 모양이라고. 비극적이도, 스펙터클하지도 않은 담담한 하루하루를 나는, 우리들은, 이렇게나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고.”
집과 집을 떠도는 저자의 ‘이사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어느새 함께 깨닫는다. 내 집은 비록 임대일지라도 내 삶은 임시가 아니라는 것을. 내 집이 아니라도 씩씩하고 당당하게 나의 삶을 가꿀 수 있음을. 1만3,8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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