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연구개발(R&D) 과제를 평가할 때 연구자가 ‘제대로, 가장 공정하게 평가받고 있다’며 수긍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실력 있는 연구를 분별해낼 수 있는 평가 시스템에 공을 들여야 해요.”
노정혜(62·사진) 신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은 9일 대전청사에서 열린 취임식 후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인공지능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평가자를 공정하게 선정하고 규모가 큰 과제는 전문가가 더 많이 참여하는 심층평가를 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6대 이사장인 그는 한국연구재단 최초의 여성 이사장으로 3년간 국가 R&D 예산의 4분의1인 4조8,000억원(2017년 기준)을 R&D·인력양성·기반조성·국제협력에 집행하는 책임을 맡는다. 연구재단은 한국과학재단·한국학술진흥재단·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이 통합돼 지난 2009년 출범했다.
노 이사장은 “32년간 연구자로 활동하며 ‘열심히 연구하면 안정적으로 연구비가 지급된다’는 믿음을 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연구비가 어느 때는 선정률이 확 떨어지는 등 널뛰기하는 경향이 있어 제대로 된 과제는 일정한 비율로 중장기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가 공정한 경쟁과 예측가능한 절차를 통해 연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자는 얘기다. 미국 위스콘신대 분자생물학 박사인 그는 한국연구재단 정책자문위원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을 지내고 현재까지 국립서울대 법인이사, 기초연구학회연합회 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연구자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한 국가 R&D 혁신방안을 고민해왔다.
그는 “연구재단이 대학과 연구기관·연구자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플랫폼과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연구자가 새롭고 도전적인 연구주제를 잡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자유롭게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풍토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기초연구를 대폭 강화하고 미래지향적 연구생태계의 체질 변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하겠다”며 “연구재단이 선진국형 기관으로 몸집에 걸맞게 체질을 강화하고 무엇보다 연구자의 성과를 잘 발굴해 그 의미를 국민께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노 이사장은 최근 일부 연구현장의 모럴해저드에 관해 “연구윤리·진실성은 연구자의 기본덕목으로 제도를 자꾸 만들기보다 연구자 개인과 공동체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자율·책임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며 “연구재단도 좀 더 확인할 수 있는 절차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규제로 가면 안 된다”고 피력했다. 앞서 그는 2005년 말 황우석 사태 당시 최초의 여성 서울대 연구처장으로 논문조작을 원칙대로 규명했다가 2006년 초 극성 지지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한편 그는 ‘이달의 과학기술인상’ 등 6종의 우수과학기술자상과 대한민국엔지니어상의 포상금 폐지 논란과 관련해 “정부가 과학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는데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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