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희생된 4·3의 원혼을 문학으로 위로하고 작가는 진혼굿을 주재하는 무당으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설 ‘순이삼촌’을 써 4·3을 알린 소설가 현기영은 27일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아 한화리조트제주에서 열린 ‘2018 전국문학인 제주대회’ 기조강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변변한 무기도 없이 억제할 수 없는 분노만 가지고 봉기한 200명 혹은 300명의 젊은이를 무찌르기 위해 무고한 양민 약 3만명을 소탕한 것이 바로 4·3사건의 골자”라며 역대 독재정권들은 피해 당사자들의 맺힌 한을 해원해주기는커녕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현 작가는 “왜곡된 공식 기억을 부인하고 민중의 망가진 집단기억을 복원해내는 작업이 기억운동인데 그 운동의 선두에 문학인들이 포진했다”며 “가슴을 짓누르는 두려움 속에 진행된 4·3문학은 타버린 마을과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문학이었다”고 했다.
그는 “4·3의 참사에 희생된 3만 원혼이 아직도 어둠에 갇힌 채 우리를 향해 애원의 손을 흔들고 있다”며 “민중 수난의 말살된 기억을 되살리고 그것이 다시는 망각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재기억시키는 일을 문학이 감당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향락적 소비문화와 범람하는 엔터테인먼트 속에서 4·3문학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고민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현 작가는 “문학의 기억운동이 소비향락주의 사회에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정교한 창작 전략이 있어야 한다”며 “상투적인 스토리텔링만으로는 안 되고 창의적인 형식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유대인 수난의 참혹한 역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코미디를 도입한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노예 문제를 창의적 형식미로 표현한 소설 ‘빌러비드’ 같은 작품을 예로 들며 “정통 리얼리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환상·코미디도 아우를 수 있고 모더니즘의 방법론도 차용하는 등 새로운 리얼리즘을 찾아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동아시아의 문학적 항쟁과 연대’를 주제로 한 국제 문학 심포지엄에서는 베트남 소설가 바오닌의 ‘평화를 위한 전쟁문학’, 대만 시인 리민용의 ‘대만 국가 재건과 사회 개혁의 길 위에서’ 등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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