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지난 2015년 14조원을 넘어서며 세계 7위 규모로 커졌다. 이들 명품 브랜드의 ‘고배당’과 ‘쥐꼬리 기부금’은 하루 이틀의 이슈가 아니다. 문제는 서울경제신문이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14개 주요 명품업체의 보고서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명품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명품업체들이 한국에서 돈을 벌어가면서 정작 한국 시장과 소비자는 더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문제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기부금을 분석해보면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기부 액수는 급감했다. 그나마 줄어든 기부금도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명품 브랜드 14곳 중 상당수가 전년 대비 기부금액을 전액 삭감했다. 그나마 기부한 업체도 연간 금액만 나와 있을 뿐 기부 내역을 찾을 수 없었다.
◇명품 브랜드 대다수 기부금 완전 삭감=국내 현지법인 형태로 진출한 명품 브랜드의 상당수는 지난해 기부금이 전액 삭감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브랜드는 사회공헌 규모가 너무 작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그나마도 줄인 것이다.
이탈리아 핸드백·구두 등 패션잡화 브랜드 토즈의 한국법인인 토즈코리아의 기부금은 2016년 7,050만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한 푼도 없었다. 명품 패션잡화 브랜드 펜디도 2016년 651만원이었던 기부금이 지난해는 0원을 기록했다. 캐시미어로 유명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로로피아나 역시 지난해 기부금이 전년 대비 500만원 줄어 한 푼도 없었다.
그 외 2016년 300만원을 기부했던 페라가모코리아는 지난해 기부실적이 없다. 크리스찬디올은 1,280만원에서 지난해 530만원으로 액수가 절반 넘게 줄었다. 발렌시아가·불가리·발렌티노 등은 아예 기부금 지출이 없었다.
◇기부금, 어디 쓰였는지도 모른다=그나마 기부금을 낸 곳도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자세한 기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테가베네타코리아는 지난해 약 130만원을 새롭게 기부금으로 지출했다. 하지만 어디에 기부했는지는 주석 형태로도 볼 수 없었다. 인터넷상에서도 찾지 못했다.
명품 브랜드들은 대부분 폐쇄적 경영방식을 고수하는 편이며 이런 맥락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어떻게 진행했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려지지 않는다. 한국코카콜라·오비맥주 등 상당수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들이 각종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인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들 업체의 경우 글로벌 본사에서 각국 법인별로 기부를 비롯한 사회공헌 활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비인기 스포츠 종목 선수 후원, 환경정화 활동, 저소득층 대상 기부 등 각종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투자도 많다.
◇본사 배당금은 여전히 높아=명품 브랜드들은 기부금이 적어지고 실적이 떨어져도 본국으로 보내는 배당금은 낮추지 않았다. 펜디코리아는 지난해 50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이 기간에 거둔 영업이익은 약 2억7,300만 원으로 배당금이 영업이익의 20배에 육박한다. 지분을 글로벌 본사가 100% 쥐고 있어 이 돈은 고스란히 해외로 나갔다.
불가리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배당금이 140억원으로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2억원, 13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버버리코리아는 2016년 300억 원의 배당을 실시했다. 배당 규모가 1년 사이 두 배 늘었다. 버버리코리아는 3월 결산법인으로 지난해 감사보고서는 올 6~7월께 공개된다.
이런 가운데 ‘명품 빅3’로 꼽히는 샤넬·에르메스·루이비통은 이러한 경영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한회사이다 보니 현행 ‘주식회사 등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상 감사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처음에 주식회사 형태로 국내에 진출했으나 2012년 유한회사로 법인 형태를 바꿨다. 배당성향이 과도하지만 기부금 등 사회공헌도가 낮아 논란이 되자 취한 조치로 알려졌다. 샤넬코리아는 1991년 한국법인을 만들 때부터 유한회사였고 에르메스도 마찬가지다. 그 외 구찌·휴고보스·마이클코어스·고야드 등 주요 명품 브랜드의 국내법인 중 상당수는 유한회사다.
하지만 내후년부터는 이들 업체의 감사보고서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비판여론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금융위원회가 외감법 시행령을 개정해 유한회사도 감사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년 11월 이후 첫 사업연도부터 외부 감사가 의무화되기 때문에 2020년 감사보고서부터 공개된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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