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을 상징하는 표현인 ‘9988’, 즉 중소기업 수가 전체 기업의 99%를 구성하고 있고 전체 고용의 88%를 차지한다는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며 일자리의 원천인 중소기업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승희 국세청장이 지난 3월8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국세청, 중소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소회다.
이처럼 ‘9988’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통계다. 그러나 이 통계가 잘못됐다는 것은 관련 정부부처나 기관·전문가들이면 다 안다. 특히 고용비중을 뜻하는 88%가 실제보다 과장돼왔다. ‘9988’은 통계청의 2014년 기준 ‘전국사업체조사’를 가공해 나온 것으로 정확한 중소기업 비중은 총사업체 수 대비 99.9%, 종사자 수 대비는 87.9%다. 중소기업 분류기준이 종전 종사자 수나 자본금(매출액)에서 매출액 단일기준으로 변경되는 2015년 전국 경제총조사가 되면 2015년도의 이 수치는 각각 99.9%, 90.2%로 바뀐다. 중소기업 고용비중이 90.2%로 올라갔다.
문제는 이들 수치의 기반이 되는 전국사업체조사나 경제총조사의 기업방문조사가 사업장(사업체) 단위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대기업이 본사와 지사 10곳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자. 사업체단위조사는 이들 모두를 독립사업체로 본다. 그 결과 본사는 대기업으로 보지만 나머지 10곳의 지사는 모두 중소기업으로 간주한다. 이들 지사 종사자들 역시 중소기업 종사자로 보기 때문에 중소기업 숫자나 고용이 과대평가되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박충렬 박사는 2015년 경제총조사에서 이 같은 ‘지사’가 17만8,869개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사업체단위로 조사한 결과 업체 수가 387만4,167개로 나왔는데 지사를 빼고 나니 기업체단위로는 업체 수가 369만5,298개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통계청 역시 사업체 단위조사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경제총조사나 사업체조사는 실제 조사원이 나가서 조사하기 때문에 사전에 해당 사업장이 독립사업체인지, 대기업의 지사나 지점인지 파악하고 조사를 나가기는 어렵다”며 “앞으로 행정자료 등을 통해 개선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체단위조사는 본사와 지사(지점)를 파악해 이들은 1개 기업체로 본다. 앞의 A대기업 사례와 같은 경우, 본사와 10개 지사 모두 대기업에 포함된다는 얘기다. 성기창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연구부장은 “개별 사업장(사업체)만 보고 중소기업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기업체 단위로 보면 중소기업 업체 수 비중은 99% 그대로인 반면 고용비중은 82%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성기창 부장은 “사업체단위조사의 문제점은 중소기업 관련자들이 대부분 아는 내용”이라고 전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역시 해당 통계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중소벤처부 관계자는 “중소기업 통계를 설명할 때마다 기업체가 아닌 사업체기준이라는 점을 명시한다”고 밝혔다.
통계청의 일자리행정통계는 행정자료를 활용한 기업체단위조사로 중소기업 종사자의 비중은 성기창 부장이 말한 82%보다 떨어진다. 일자리행정통계에 따르면 2015년 전체 영리기업 기준 중소기업 근로자 비중은 80.4%, 2016년에는 80.8%로 나타난다. 88~90% 수준인 사업체단위조사 결과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기준은 다르지만 영리와 비영리(정부 등 공공 부문과 학교·병원 등)기업을 합하고 종사자 기준으로 보면 2016년도 300인 이상 고용 기업의 근로자 비중은 전체 근로자의 27.8%를 차지한다. 300인 미만(2014년까지 중소기업 분류 기준) 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비중으로 하면 72.2%다.
결국 ‘9988’이란 통계 패러다임으로 ‘중소기업 근로자 비중은 88%’라는 인식이 형성돼왔지만 실제로는 80% 안팎이고 정부 학교·병원 등 비영리기업을 합할 경우 72%까지 떨어진다.
중소기업 비중에 대한 시선이 이렇게 다르면 당연히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시각도 달라진다. 최병천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 수나 중소기업 근로자 비중을 과대평가하면서 중소기업 정책 역시 과잉정책이 나오고 있다”며 “이는 역으로 대기업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최병천 위원은 “중소기업 과잉정책이란 결국 중소기업 지원의 과잉을 의미한다”며 “국가로부터 중소기업 정책금융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해당 기업의 경쟁력과 자생력이 떨어진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탐사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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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식기자 miracl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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