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있는 날 아침이면 매일 성악가 출신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목을 푸는 배우,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면 집요할 정도로 파고 들어가는 배우, 공연이 있는 당일엔 물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는 배우. 바로 17년차 뮤지컬 배우 김소현 이야기이다.
“누가 선택해주지 않으면 못하는 직업이 바로 배우잖아요. 되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죠. 늘 오디션을 봐야하고, 선택되지 못한 날들이 더 많아요. 그걸 뛰어넘어 하는 날엔 ‘어떻게 하지’ 란 생각에 ‘조마 조마’ 노심초사 날들이 계속돼요. 제가 전형적인 여배우 스타일이라 더욱 걱정이 많나봐요.”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나와 지난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히로인 크리스틴 다에 역에 오디션을 통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그는 이후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스’, ‘대장금’ ‘지킬 앤 하이드’, ‘엘리자벳’, ‘마리 앙투아네트’, ‘명성황후’, ‘모차르트!’ 등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을 만났다.
김소현은 작품을 하면 정말 0에서부터 100까지 하나 하나 쌓아 가는 배우이다. 한계치가 없어서 매번 힘들지만 그런 노력이 있어야 무대에 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 성악을 전공하던 대학시절엔 빼곡이 적은 스터디 노트가 있었을 정도. 그에 따르면 “징그러울 정도로 콩나물(음표) 하나 하나까지 분석”했단다.
“공연이나 예술쪽은 100점이 없잖아요.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100점 근처에 가지 못하지만 그만큼 노력하고 싶어요. 뭐 하나라도 더 알게 되면 결과가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주어진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면 결과 역시 극대화 되는 것 같아 더더욱 노력하게 돼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부부의 연을 맺은 김소현-손준호 커플은 KBS ‘불후의 명곡’, SBS ‘오! 마이 베이비’ 등에 동반 출연해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는 3월엔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타이틀 롤과 고종 역으로 부부 호흡을 맞춘다. 두 부부의 성격은 극과 극이다. 오히려 그 점이 끌려 사랑의 기운이 싹텄다.
“처음에 준호씨랑 ‘오페라의 유령’을 연습하는데, 너무 긴장을 안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준호씨가 맡았던 라울 역이 더더구나 비중도 큰 역인데 말이죠. 보통 공연을 준비하면 2달 정도 호흡을 맞추고 올라가야 하는데, 준호씨가 뒤늦게 합류해서 저와 몇 번 합을 안 맞춰본 상대였어요. 이 사람이 너무 안 떨고 하길래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다니까요. 태생적인 성격이그런 것 같아요. 제가 ‘소리가 안 나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하면, 남편은 ‘컨디션이 안 좋아도 소리는 나게 돼 있어. 소리는 안 나지 않아.’라고 하죠. 저와는 다른 시각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좋더라구요. 달라서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아들 주안 군을 뮤지컬 배우로 키우고 싶은지 여부 역시 아내와 남편의 생각이 달랐다. 긍정적인 손준호 덕분에 도움을 받는다면서도, 김소현은 “절대 뮤지컬 배우로 키울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배우의 길이 힘든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러했다.
“손준호 씨는 주안이가 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밀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엄청 싸우지 않을까 생각도 들어요. 배우란 게 10%의 화려함을 위해 힘든 90%를 감수해야 해요. 누구보다 이를 잘 아는 제가 어떻게 시킬 수 있겠어요. 힘들지 않은 직업이 없겠지만, 똑같이 힘들어도 차라리 제가 모르는 다른 직업을 했으면 좋겠어요. 부모로서 자식의 힘든 부분을 다 안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매번 오디션을 보는 나날들. 무대 뒤에서 초긴장하면서 준비하는 시간들. 17년이란 시간 동안 김소현의 인생 속에서 계속 됐던 일들이다. 정말 아파서 무대에 오르기 힘들 정도였지만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해 공연을 끝마치기도 했다.
그는 “우연히 하다보니, 17년이란 시간이 지난 것 같아요.”라고 웃었지만 “무대가 무섭다는 걸 알기에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더욱 긴장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강철이라고요? 오히려 유리멘탈이죠. 단단해지는 건 힘든 것 같아요. 오히려 데뷔할 때가 뭘 모르니까 강철이었죠. 지금은 얇아질 대로 얇아져서 더 준비하지 않으면 안 돼요. 한번 했던 배역이라도 늘 대본을 찾아보게 되죠. 아무래도 무대가 무섭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해요. 공연 전에 밥을 못 먹는 것, 공연 전날 밤 늦게 뭘 먹지 않는 것도 여전해요. 그래서 공연 작업을 하게 되면 몸이 점점 작아져요.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죠. 그러다 작품이 끝나면 살이 붙어요. 호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소현은 무대 위에 오르는 걸 그만두지 않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쾌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박동 소리가 그가 살아있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무대에 서면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느낀다고 하잖아요. 딱 그 마음이에요. 배우들이 왜 자꾸 그렇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무대에 서는지는 배우들끼리는 서로 잘 아는 것 같아요, 물론 가족이 내 삶의 이유이기도 하고, 무대가 주는 희열을 버리긴 힘들 듯 해요. 정말 아이를 낳기 전까진 최고의 행복이 바로 무대였어요. 만약에 뮤지컬을 안 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
한편, 김소현은 뮤지컬 ‘명성황후’ 타이틀 롤을 맡아 작품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3월6일부터 4월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 김소현-최현주-손준호-박완-오종혁-최우혁 등이 출연한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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