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두 수장인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역대 금융당국 수장에 비해 존재감이 덜하다는 평가는 뒤로 하더라도 행보마다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가상화폐 수습과정에서는 존재감 부재와 구설에 휩싸이더니 급기야 도덕성 논란을 일으켰고, 하나금융 회장 선임 과정에서는 투박한 관치로 시장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노동이사제 도입과 은산분리 문제 등 과도한 청와대 코드행정도 논란거리다.
①아마추어식 관치행보=하나금융 문제는 아마추어식 관치의 결정판이다. 금융지주 지배구조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다면 검사나 감독 등을 통해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를 잡아내 규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말로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변죽만 울리다 보니 되레 인사개입이나 관치논란만 증폭시켰다. 결과적으로 당국의 두 수장이 동시에 상처를 입는 치욕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김용범 부위원장이나 김태현 금융정책국장 등 핵심 참모들이 뒤로 빠지면서 최 위원장 혼자만 앞에 나섰다는 점이다. 전략 부재 속에 장수 혼자만 외로운 싸움을 한 셈이다. 최 위원장만 지배구조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인지, 아니면 나머지 참모들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 것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수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조직 전체가 위험에 빠진 것이다. 이 때문에 조직 내부에 심각한 소통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시장이 과열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면 금융당국이 관치를 하는 게 당연하다”면서도 “과거에는 당국이 개입해도 드러나지 않게 세련되게 개입을 했지만 지금은 너무 투박해 지켜보는 이들도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 위원장이 국제금융 분야만 오래 한 탓에 국내 금융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최 원장은 가벼운 처신으로 도마에 올랐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의 ‘거품’이 붕괴할 것이라는 데 내기를 걸겠다고 해 논란을 빚었던 최 원장은 18일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타에 “송구스럽다”며 사과를 해야 했다. 최 원장의 발언 당시에 이미 심각한 현안을 너무 가볍게 희화한 게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금감원장의 발언 한마디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감안하지 않고 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왔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역대 어느 금감원장이 최 원장처럼 일반인에게 이렇게 유명해졌던 적이 있느냐”며 꼬집었다.
②과도한 청와대 코드맞추기=금융권에서는 당국 수장들이 금융산업을 육성하려는 철학이나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호소들이 계속 나온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투자은행(IB) 도입을 위해 뛰어다닌 것과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조선업계 구조조정을 위해 “내가 책임을 진다”며 결기를 보인 것과는 비교된다는 것이다. 대신 정부의 정책 코드 맞추기에만 신경 쓰다 보니 시장에 맡겨야 할 금리나 수수료 등에 당국의 무리한 개입만 키우고 있다. 여기에 현 정부의 친노조 성향을 의식하듯 노동이사제 도입에 긍정 입장을 밝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에는 최 위원장이 서울 을지로 방산시장 등을 방문해 “최저임금 상승에도 고용을 유지하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저금리 대출 상품을 내놓겠다”고 밝힌 게 논란이 됐다. 당장 시중은행들 사이에서는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중소기업들의 부실이 우려되는 상황인데 금융위원장이 도리어 빚을 권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 불안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정부 차원에서 현장을 찾은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은행 건전성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실 가능성이 큰 중기 대출을 늘리겠다고 나선 모양새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면에 우선시해야 할 미래를 보는 금융정책은 뒤로 밀리고 있다. 핀테크 등 금융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전임 위원장 시절부터 육성해 온 인터넷전문은행은 은산분리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서 쪼그라들 처지다.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은산분리에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올해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는 분위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당 의원 한두명이 반대하는데 당국이 끈질기게 설득하면 될 문제인데 눈치를 보는지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③금융철학·색깔부재=금융업계의 최대 관심은 글로벌 시장 진출이다. 그런데도 최 위원장은 해외를 돌며 현지 당국을 만나 국내 금융사의 진출을 도왔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동남아 등 글로벌 시장을 진출하려고 해도 현지 당국의 규제를 풀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며 “금융당국 수장이 동남아 현지로 날아가 당국 수장을 만나고 설득해서 ‘우리 금융회사 한번 믿어봐라. 현지서 문제없이 일 잘하겠다’고 보증해 주면 진출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고민은 왜 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금융권뿐만 아니라 보험업계도 유럽식 자본규제(IFRS17) 시행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는데 최 위원장은 무관심으로 일관해 불만이 커지고 있다.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유럽의 자본규제가 시행되면 막대한 자본확충을 해야 하고 대기업 보험사들도 매물로 나올 수 있는데 최 위원장이 사인을 주지 않고 있다”며 “보험업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타임테이블을 줘야 하는데 전혀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놀랍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위와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를 외치고 특히 보험과 관련해서는 감독 조직까지 강화했지만 막상 보험산업 발전방안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최대 현안인 가상화폐 대책을 놓고도 주무 부처임에도 제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법무부 등 타 부처에 휩쓸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④직원 가상화폐 투기 연루…도덕성 또 논란=이 같은 정책혼란보다 더 큰 문제는 금감원이 또다시 도덕성 논란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채용비리 사태를 가까스로 벗어나기 위해 최 원장이 조직쇄신을 외쳤는데 전 국민의 관심사인 가상화폐 투기와 관련 내부 직원이 연루돼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무조정실로 파견된 한 직원이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정부의 대책발표 직전 매도해 차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최 원장은 “(그런 사실을) 통보받아서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직원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11일까지 총 1,300만원을 투자해 700만원의 시세차익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관련 법상 비트코인은 ‘금융투자상품’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설령 투자를 했다 해도 공무원 윤리강령이나 금감원 복무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대책 발표 시점과 내용을 미리 알고 돈을 뺐다면 그 자체로 감독당국 업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특히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는 도박’이라며 잇단 강경책을 내놓은 가운데 정작 금융당국 직원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가상화폐 거래로 이익을 챙겼다면 도덕적 해이는 물론 투자자들의 비판이 금감원으로 집중될 수 있다. 채용 비리 의혹이 터진 데다 방만 경영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을 받고 쇄신책과 조직개편을 마무리한 시점인데 도덕성 논란이 또 불거지면서 최 원장의 리더십도 흔들리게 된 셈이다. 금융계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지금이라도 두 감독수장이 초심으로 돌아가 코드형 정책이 아닌 시장의 아픈 구석과 미래형 정책 부분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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