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소가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선 건조 일감을 두고 벌인 수주전에서 중국에 완패했다. 금융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업은 중국 조선소가 저가 공세를 이어가면서 한국이 주도하던 초대형 선박 시장마저 중국에 내주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20일 조선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2만2,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9척을 발주한 CMA CGM이 최근 중국 조선소 2곳과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이중연료(벙커씨유와 액화천연가스를 모두 사용하는 시스템) 옵션이 포함될 경우 한 척당 선박 가격은 최대 1억6,000만달러로 9척의 수주 총액은 무려 14억4,0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컨테이너선 수주 중 가장 큰 규모는 삼성중공업이 지난 5월 건조한 2만1,413TEU급. 그만큼 이번 수주가 초대형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입찰에는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 3사가 모두 참여했지만 중국의 가격 경쟁력에 고배를 마셨다. 외신에 따르면 3사는 이번에 발주된 컨테이너선 가격으로 1억7,500만달러를 책정해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의 입찰가와 1,500만달러 차이가 난다. 이번 입찰에 참여했던 국내 조선사의 한 관계자는 “입찰 초기에는 국내 3사 중 한 곳이 일감을 가져가지 않겠냐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는데 막상 경쟁에 들어가니 중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치고 들어왔다”며 혀를 내둘렀다.
업계에서는 중국 조선소가 저가에 입찰할 수 있던 배경으로 중국 당국의 자국 조선소에 대한 금융지원을 꼽았다. 아울러 중국 금융당국이 선박을 발주하는 선사에 자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조건으로 대규모 금융지원을 해준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금융당국은 선박 가격이 100이면 90 이상을 선사에 저리로 지원해주고 있다”며 “이번 건 역시 중국 금융당국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중국 조선소의 초대형 선박 건조기술이 발전한 점도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조선소들은 앞서 2015년 2만TEU급 선박 11척을 수주하면서 대형 컨테이너선 건조기술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15년에는 자국 선사인 COSCO가 발주한 물량을 받았으나 이번에는 프랑스 선사 발주를 따낸 만큼 해외 선사들에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다.
조선 업계에서는 그간 우위를 점했던 초대형 선박 시장마저 중국에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 선박 시장에서 한국 선박에만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로 여전히 국내 조선소의 기술은 압도적”이라면서도 “그런 품질 차이마저 중국의 가격 경쟁력이 상쇄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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