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3년 폐지된 통상교섭본부가 부활했지만 제 기능을 하려면 앞으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10년 만에 복귀한 김현종 본부장이 적극적으로 조직을 정비하고 인력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겠지만 통상교섭본부가 부활했다고 그동안 소극적 통상정책에 익숙했던 조직을 하루아침에 바꿔놓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산업통상자원부 내 무역통상 체제가 취약했고 통상교섭본부 출범시 겨우 4명의 인원만이 늘어났다. 한때 산업부로 전출해 왔던 외교부 소속의 통상 전문 인력도 대부분 복귀했다.
통상교섭본부가 채 자리도 잡기 전에 해결해야 할 통상 현안과 과제는 수두룩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 대응해야 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국의 무역 보복, 심각해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는 당장 대응이 필요하며 문재인 정부의 통상정책 방향도 수립해야 한다.
김 본부장은 2007년 한미 FTA 협상의 주역이지만 당면한 통상 현안은 한미 FTA 협상과는 차원이 다른 고차방정식이다. 한미 FTA 협상은 민감한 협상 현안에 대한 정치적 결단을 얻어내는 것이 주효했다면 한미 FTA 개정협상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포퓰리즘, 군사안보적 요소까지 겹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과제다.
한미 FTA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비즈니스식 정치 스타일로 보면 미국은 우리가 지키려는 것을 역이용할 것이다. 당장은 조직 정비와 미중 통상 현안 대응이 급선무이겠지만 보다 공세적인 통상전략 수립으로 우리나라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고려해볼 수 있는 카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과 한일 FTA 검토가 될 수 있다.
지난 정부가 TPP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필자는 통상에 대한 당시 정부의 입장으로 봐 우리나라의 TPP 가입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고 덜컥 TPP 참여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적극적인 통상정책을 표방하는 김 본부장 체제에서는 가능할 수 있고 현재 미국이 TPP를 탈퇴한 상황에서 가입 여건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글로벌 FTA 네트워크를 구축한 우리나라의 FTA 정책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일본과의 FTA 실패다. 한일 간 정치 경제 사회적 특수성으로 협상에 애로가 여전하지만 그동안의 여건 변화로 보면 이제 일본과의 FTA를 공식적으로 협의해야 하는 시점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양국 모두 상당한 FTA 역량을 쌓았다. TPP에 대해 양국의 이해관계도 유리해지고 있다. 2004년 말 제6차 한일 FTA 협상이 파국을 맞았을 때 김 본부장은 한일 FTA를 접고 미국과의 FTA 추진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협상을 타결해 오늘날 우리나라 FTA 네트워크의 핵심축을 쌓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김 본부장은 저서에서 일본과의 FTA를 언급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적었지만 이제 한일 FTA는 잘해야 열일곱 번째 이후 단추가 되므로 많이 늦었다.
통상정책에 관한 한 전 정부의 최대 실정은 산업부의 통상정책을 제조업에 한정시켰다는 것이다. 농업과 수산업은 각각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에, 서비스는 분야에 따라 기획재정부·문화체육관광부·미래창조과학부 등에 분산돼 있었다. 그렇다고 제조업 통상 정책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었다. 산업부 내의 역할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제조업 담당국이 무역통상 담당국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타결한 한중 FTA에 이러한 점이 반영돼 있다. 중국이 매달리던 FTA가 ‘반쪽짜리 협정’으로 타결된 배경이다.
김 본부장이 취임사에서 “수세적·방어적 자세로 통상 업무를 해나간다면 우리는 구한말 때처럼 미래가 없다”고 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 FTA 협상에서 봤듯이 우리나라와 같이 중규모 국가의 통상정책은 범국가적 역량을 모을 때 결실을 볼 수 있다. 각 부처로 다원화된 통상정책 권한을 통상교섭본부로 집결시키지 않으면 적극적인 통상협상을 하기 어렵다. 차관이지만 “장관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는 김 본부장 체제의 통상교섭본부의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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