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바이오벤처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의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시장 개척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1990년대~2000년대 초중반 창업한 1~1.5세대 바이오벤처들이 내공을 쌓으며 절치부심한 결과다.
시가총액이 3조원에 육박하는 메디톡스는 지난 2006년 흔히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톡신 제제를 국산화한데 이어 2014년 세계 첫 액상형 제품, 지난해 내성을 줄인 제품을 선보였다. 약효 지속기간을 지금의 6개월에서 1년 이상으로 늘린 차세대 제품도 개발하고 있다. 2000년 창업해 바이오벤처 1세대로 꼽히는 정현호 대표는 “보툴리눔톡신, 필러, 기능성 프로바이오틱스를 3대 주력 제품군으로 삼아 향후 5년 내 매출 1조원을 달성하고 글로벌 톱20 바이오 기업에 진입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김선영 바이로메드(084990) 창업자와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미국 등에서 각각 유전자치료제(당뇨병성 신경병증·족부궤양 등), 면역항암제 신약에 대한 임상 3상시험을 하고 있다. 덩치가 훨씬 큰 국내 제약회사들도 동물을 대상으로 전임상시험을 하거나 임상 1상 또는 2상까지 한 뒤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하는 수준인데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셈이다. 양사는 지난해 유상증자와 코스닥 상장을 통해 각각 1,390억원, 1,500억원 규모의 실탄를 마련했다. 간암 면역항암제 ‘펙사벡’은 암 치료를 목적으로 유전자를 재조합한 항암 바이러스가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감염시켜 파괴하는 동시에 몸안의 면역체계가 암을 죽이도록 유도해 효능이 우수하고 부작용이 적다.
앞서 코스닥 대장주 셀트리온(068270)을 창업한 서정진 회장은 바이오시밀러(동등 생물의약품)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했던 2000년대 초반 국내외 자본을 끌어모아 인천 송도에 생산시설을 짓고 세계 첫 제품인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램시마’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국내외에 바이오시밀러 열풍을 몰고오고 회사를 매출 1조원을 넘보는 기업으로 키워낸 서 회장은 “현재 개발 중인 바이오시밀러와 신약 제품 라인업을 고려하면 ‘글로벌 톱10’ 진입이라는 비전 실현도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특정 유전자 부위를 잘라내도록 고안된 효소 단백질인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을 가진 코넥스 상장사 툴젠은 우리나라와 호주에서 관련 특허를 인정받았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이 1999년 창업했는데 다양한 국내외 기업·연구자들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혈우병·에이즈 등 신약 개발은 물론 동식물 육종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과도한 근육 발달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타틴 유전자를 없애 단백질 함량은 늘리고 지방 함량은 낮춘 ‘슈퍼 근육 돼지’, 올리브유의 주성분으로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산 함량을 2배 가까이 늘린 콩, 마리당 3,000만~5,000만원 하는 실험쥐 등을 개발했다. 광우병 내성 소, 장기이식용 돼지, 네덜란드 기업과 잘 무르지 않는 토마토 등도 개발하고 있다. 임상시험 등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코스닥 재도전에도 나설 계획이다.
바이오벤처 1호 기업인 바이오니아는 재조합 유전자를 넣어주면 6~24시간 만에 정제까지 마친 최대 16종의 합성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 전자동 단백질합성기 ‘엑시프로젠’을 세계 첫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바이러스 등 감염 여부를 현장에서 20분 안에 확인할 수 있는 휴대용 진단장비도 세계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목표다.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는 “유전자 합성기 등은 로슈·애보트 제품과 품질은 대등하면서 가격이 싼 패스트팔로어 제품이라면 단백질합성기 등은 기존 제품들을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는 혁신적 제품”이라며 “이런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느냐에 한국 바이오 산업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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