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슈퍼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가운데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동부하이텍도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난해 대규모 흑자는 물론 20%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정도로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 2001년 시스템반도체 상업생산을 시작한 후 십수년간 매년 2,000억~3,000억원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변신이다. 반도체 경기 호조와 함께 중소 팹리스(설계회사)와의 끈끈한 협력관계를 통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 실적 호전의 비결로 꼽힌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7,700억원대의 매출과 1,7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영업이익률도 2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매출은 2015년에 비해 16% 늘어나고 영업이익은 무려 36%나 급증했다.
올해 실적 전망도 희망적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동차 전장화 등으로 글로벌 시스템반도체 칩에 대한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8,100억원대의 매출과 1,800억원대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사상 최대 규모다.
이 같은 동부하이텍의 고공비행에는 반도체 경기호조와 더불어 팹리스와의 ‘공존공영’ 비즈니스모델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부의 파운드리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주력하고 있는 대규모 물량 위주 사업과는 달리 수많은 중소 팹리스들의 요구 사항에 맞게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동부하이텍 관계자는 “요즘처럼 주문이 쇄도할 때는 1개의 생산라인에서 30~40개의 고객 제품이 한꺼번에 생산되기도 한다”며 “국내 중소 팹리스 업체들은 동부의 파운드리 서비스를 이용해 진입장벽이 높은 시스템반도체 시장에 수월하게 안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동부는 고비용이 들어가는 설계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해 중소 팹리스들에 무상으로 지원하기도 하고 하나의 웨이퍼에 다양한 반도체 시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인 MPW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동부가 파운드리 사업을 시작한 2001년 국내 팹리스 업체 수는 50개에 불과했지만 동부가 성장허브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2015년 말 150개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체 매출규모는 같은 기간 1,200억원에서 2조원 규모로 확대됐다”고 소개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앞으로의 전망이 더 밝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IoT·웨어러블·드론·스마트카 등 첨단 분야는 매년 4% 이상의 고성장이 예상되는데 여기에 공급되는 미래형 시스템반도체도 급증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파운드리 시장규모는 약 540억달러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16%가량을 차지했다. 오는 2019년까지 전체 반도체시장은 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파운드리 분야는 7%의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부하이텍 성공스토리에서 김준기 회장의 뚝심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초반 경영환경이 어려워 차입금이 2조원을 넘어서고 한 해 이자로만 2,000억원을 냈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시스템반도체에 매달렸다. 1조원이 넘는 보유자산을 매각했고 김 회장은 3,0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다, 상업생산을 시작한 후 15년이 되는 2015년에서야 순이익을 기록하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동부그룹으로서는 ‘계륵’ 같았던 회사가 돈을 벌어들이는 ‘캐시카우’가 된 것이다.
충북 음성에 있는 동부하이텍 상우공장 1층에는 ‘우리는 비메모리 업계에 헌신해 조국 선진화에 기여 한다’는 글귀가 걸려 있다. 김 회장의 친필 액자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그늘에 가려 조명을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척박한 국내 파운드리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오기와 자신감이 함께 묻어 있다. 동부하이텍 관계자는 “한국 파운드리 산업의 자존심을 지키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겠다는 다부진 각오와 결기가 있었기에 인고의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다”면서 “팹리스 업체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정명기자 vicsj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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