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매년 신년사를 통해 새해 경영환경에 대한 판단과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데요.
금융권 CEO들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영환경이 과거 어느 때보다 불안정하다고 입을 모으면서, 위기를 돌파할 의지와 전략을 드러냈습니다.
올해는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과 가계부채 부실화에 대한 우려 등 특히 은행권을 둘러싼 환경변화가 많은데요. 조직을 이끄는 수장들은 올 한해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금융증권부 정훈규기자와 얘기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앵커]
Q. 신년사를 보면 금융권 CEO들은 올해 경영환경이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데요. 돌이켜 보면 지난해도 저금리 지속 등으로 은행들에게는 힘겨운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됐는데, 실제로는 호황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실적을 거뒀습니다. 금융권 최고경영자들이 또 한번 위기를 말하는 이유는 뭡니까?
[기자]
네, 말씀하신 대로 지난해 이맘때도 위기에 대한 인식들은 지금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은행의 등장은 은행법 개정이 지연되면서 올해로 연기됐고, 최대 4차례까지 예상됐던 미국의 금리 인상은 지난해 마지막 달인 12월 한차례로 그쳤는데요.
낮은 금리가 지속 되다 보니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는 수요가 크게 늘었고, 이 덕에 지난해 은행들은 순이자마진 감소에도 이자수익이 늘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호실적을 기록했습니다.
반면 올해는 지난해 우려했던 이슈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국내외 정치적 불확실성이 더해져 위기감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지주 회장들이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호실적에 젖어 조직이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하고 나선 겁니다.
일례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사자성어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제도를 개혁한다는 뜻의 ‘해현경장’을 제시했는데요.
특히 ‘금융은 필요하지만 은행은 사라질 것’이라는 빌 게이츠의 말을 인용해, 은행만 바라보는 수익구조를 벗어 던져야 한다고 긴장감을 높였습니다.
김 회장은 손님의 기쁨, 그 하나를 목표로 그룹 전체가 ‘원 컴퍼니(One Company)’, 즉 하나의 회사가 돼서 협업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협업을 강조한 ‘하나의 회사’라는 개념은 올해 금융권 최고경영자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위기 돌파 전략이기도 합니다.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도 ‘원 신한’, 즉 ‘하나의 회사’로서 가치 창출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고요.
새해를 맞아 현대증권과 KB투자증권을 통합한 KB증권을 공식 출범시킨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함께 일해야 할 부분이 많아졌다”면서 협업을 통해 ‘재산증식의 대명사’가 되자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앵커]
Q. 민간 금융지주사들은 지난해 예상 밖의 호실적을 거두긴 했지만, 산업·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과 특수은행인 농협은행은 지난 해 조선·해운 구조조정의 여파로 직격탄을 맞아 입장이 조금 다를 텐데요. 신년사에서는 어떤 얘기들이 나왔나요?
[기자]
네, 지난해 기업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은 국책은행들과 농협금융의 수장들은 리스크 관리와 신성장동력 발굴을 올해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재도약을 외쳤습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신년사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간다’는 의미의 승풍파랑(乘風破浪)을 제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힘차게 나아갈 것을 주문했는데요.
또 기업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4차 산업혁명 관련 미래산업 발굴과 육성으로 성장엔진을 재점화하는데 산업은행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역시 “올해도 조선·해운업황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구조조정 등 취약산업의 연착륙을 도모해달라”고 당부했는데요. 특히 “올해를 지속가능경영의 원년으로 정하고 경제의 근본적인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난 상반기 구조조정 여파에 2,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비상경영에 들어간 농협금융그룹의 김용환 회장은 신년사에서 “2017년을 농협금융 재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요.
김 회장은 다른 금융지주 회장들처럼 자회사 간 시너지 창출을 주요 과제로 꼽으면서, 내실경영과 수익성 제고, 리스크 역량 강화 등도 함께 강조했습니다.
[앵커]
Q. 지난해 실적에 따라 표현들은 조금 다르지만, 지난해를 잊고 올해 새롭게 다시 해보자는 의미는 일맥 상통하는 것 같은데요. 올해 실제로 새롭게 시작하는 은행들도 있죠?
[기자]
네, 정부의 소유였던 우리은행이 민간 금융사로, 또 수협중앙회에 속해 있던 수협은행이 독립법인으로 재탄생 했는데요.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피부로 느낄만한 부분은 아니지만,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새롭게 한 해를 시작하게 된 셈인데요.
지난해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신년사에서 “금융영토를 확장하고, 종합금융그룹으로 재도약 할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특히 “다른 경쟁은행들을 모두 물리치고 명실공히 대한민국 금융의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민영화 이후 더 강해진 은행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한편 지난해 독립 출범한 이원태 수협은행장은 새로운 은행의 가치를 정립하는데 공을 들였는데요.
이 행장은 “고객중심 경영으로 사업기반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미래 사업 추진을 통해 수익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함께 했습니다.
그간 특수은행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객 저변을 넓히는 한편, 사업 영역 다각화로 수익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정훈규기자 cargo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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