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최근 레임덕 정국과 수급 공백 속에 무기력한 가운데서도 주요 상장사들의 신규 자사주 매입이 늘고 있어 주목된다. 자사주 매입은 주식시장에서 주가 급락을 막거나 부양하는 효과를 내며 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주 환원 정책으로 분류된다. 시장은 대내외 악재로 박스권에 갇혀 있지만 자사주 매입을 결정한 기업들은 앞으로 주가 상승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만큼 수급과 실적을 따져본 뒤 선별적으로 대응해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3·4분기 어닝시즌이 본격화한 이번주 들어 새롭게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하는 유가증권 및 코스닥 상장사들이 증가하고 있다. 호 실적을 내놓은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높아진 회사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주가에도 반영되길 바라는 목적에서, 반대로 부진한 성적표를 받은 기업들은 주주 가치 제고와 주가 안정 목적에서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고 있다.
이날 사상 첫 분기 1조원 매출 시대를 연 네이버는 하루 앞선 26일 장 마감 후 총 2,758억9,779만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결정을 발표했다. 매입 시기는 이날부터 내년 1월26일까지이며 총 32만9,627주를 사들일 예정이다. 네이버는 3·4 분기 매출액이 1조1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5% 늘었고 영업이익은 27.6% 증가한 2,823억원을 기록했다. 네이버 주가는 이날 장중에 4.13%까지 치솟았다. 시장에서는 이달 들어 80만원 중반대에 머물러 있던 네이버의 주가가 자사주 매입과 실적 개선이라는 두 호재를 발판 삼아 박스권을 돌파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갤럭시노트7’ 단종 여파로 이날 부진한 실적을 공개한 삼성전자(005930)도 추가적인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총 11조3,000억원 규모의 특별 자사주 매입·소각 프로그램을 완료한 삼성전자는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11월 말까지 내놓겠다”고 밝혔다. 최근 하락세를 보였던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0.38% 오른 157만3,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갤노트7 여파로 3·4분기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한 삼성SDI 역시 이날 이사회를 열고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신흥국 시장 부진과 파업 여파로 가까스로 전날 분기 영업이익 1조원을 사수하는 데 성공한 현대차(005380)도 장 마감 후 886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며 주가 하락을 막아냈다. 현대차는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나눠줄 목적으로 다음달 28일까지 64만2,160주를 장내에서 매수할 계획이다.
바이오 사업 등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는 LG화학(051910)은 최근 증권가에서 미래 성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자 24일 박진수 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들이 장내에서 회사 주식을 3,963주를 매입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최고 경영진이 대거 자사주 매입에 나선 것은 강력한 책임경영 의지와 앞으로의 실적 개선, 미래 회사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상장사 다원시스 역시 지난 25일 박선순 대표이사와 김영곤 상무이사가 각각 3만4,500주, 6,587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밖에 KSS해운(12만3,000주)과 에스에프씨(69만3,481주) 등도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지기호 LIG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자사주 매입은 시장의 유통 주식 물량을 줄여 주가 상승 재료로 활용될 수 있고 매입 후 소각까지 이어지면 강력한 주주 환원 정책인 배당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며 “주가가 오르는 기업에는 추가 상승동력을, 주가 하락 기업에는 하방 지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투자 관점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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