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3.8m, 무게 400㎏. 이른바 '집채만 한' 호랑이와 마주해도 무게감과 기백이 절대 밀리지 않는 사람. 영화 '대호' 속 천만덕은 분명 이런 인물이어야 했다. 좁다면 좁은 한국 영화계, 답은 금세 나왔다. 박훈정 감독부터 배급사·제작사까지 모두 한 사람을 가리켰다고 한다. 바로 배우 최민식(53·사진)이다.
최민식 또한 이 이야기에, 천만덕이라는 인물이 보이는 삶의 태도에 단박에 끌렸다고 했다. "천만덕은 과거 우리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살아가는 인물이에요. 이를테면 먹고살기 위해 생목숨을 끊으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새끼는 잡아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지키죠. 욕망을 최대한 억누르고 취할 만큼만을 취할 것. 이것이 천만덕이 삶을 살아가며 터득한 인생의 룰이고 그런 가치관을 지켜나감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릇된 인간의 탐욕을 저지하게 됩니다. 이건 원래의 제 가치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 삶의 의미와 철학·소중함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죠."
한눈에 반한 이야기라지만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영화 '대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호랑이 '대호'가 실제같이 구현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네 영화 환경을 돌이켜봤을 때 과연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올지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무리 메시지를 믿고 전력투구를 하려 한들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나오면 말짱 꽝이잖아요. 대체 나는 무엇을 믿고 이 영화를 선택할 것이냐는 거죠. 그렇다고 내가 501% 공감하는 이 이야기를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는데 결과물을 보고서는 그동안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어요. 연기를 하면서 대호의 얼굴, 움직임, 헐떡이는 숨, 하다못해 냄새까지 상상해보려 노력을 했는데 상상 속 모습과 거의 흡사했죠. 아, 정말 이건 감동이었습니다."
'대호'는 전작 '명량'으로 1,700만명의 관객 동원이라는 진기록을 쓴 배우의 차기작이기도 하다. 작품 선택부터 개봉에 이르기까지 부담감은 없을까. 그는 "전혀 신경이 안 쓰인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렇다고 대중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작품을 선택할 수는 없다"고 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저는 이 일(배우)을 정말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렇기에 오히려 제가 공감하고 미칠 수 있는,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선택해서는 안 되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고른다는 것은 잡을 수 없는 신기루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에 불과해요. 저는 '대호'에 501% 공감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 모두가 좋아하기를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저희는 그저 최선을 다해 만드는 것밖에 할 수 없어요. 이런 거 만들어봤는데 좀 어때요? 그때 만약 좋아해주신다면 정말 행복해지는 거죠."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사진제공=NEW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