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의 수도권 지역에서 근무하는 김모 지점장은 오후가 되면 길거리로 나서 은행 자동화기기(ATM) 옆에서 서성인다. 김 지점장은 ATM에서 현금을 찾아 돌아서는 고객들을 붙잡고 “숨어 있는 현금을 찾아보실래요”라는 말을 건넨다. A은행 그룹의 통합 멤버십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지점장이 직접 거리로 나선 것. 직원들이 영업점 창구를 지키는 동안 지점장은 부지런히 거리를 헤맨다.
B은행 서울 강남 지역의 이모 지점장은 오후에는 거의 지점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향하는 곳은 경기도 산업단지 일대로 점주권인 강남에서는 추가로 영업할 곳이 마땅치 않아 경기 지역 중소기업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대출 등을 확대할 곳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를 은행에서는 지점장의 ‘섭외활동’이라 부른다. 기업 고객뿐 아니라 자산가들에게도 직접 지점장들이 찾아가 부동산과 세무 등 다양한 민원을 해결한다.
한때 ‘은행의 꽃’으로 불리던 지점장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올 초부터 시작된 개인형종합자산관리계좌(ISA) 경쟁에 이어 은행권에서 통합멤버십 열풍이 거세지면서 지점별 실적 압박이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나금융의 하나멤버스 출시 이후 올 들어 신한금융이 신한판클럽, 우리은행이 위비멤버스를 내놓았고 KB금융도 그룹 통합 멤버십을 오는 10월께 내놓을 계획이다.
여기에 연말 임원 및 지점장급 인사가 다가오면서 각 은행별로 지점장들의 생존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은행들이 대부분 대출 자산 확대를 억제하고 비이자수익 확보를 독려하는 추세라 은행 지점장들의 영업행태는 또 한 번 변화의 흐름을 맞고 있다.
은행의 ‘야전사령관’으로까지 불리던 지점장의 위상이 변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지점장의 전결권이 약화한 것이 지점장의 영업 행태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은행의 리스크 관리가 강화되면서 지점장의 대출 전결권은 거의 사라지고 이 권한은 대부분 본부로 넘어갔다.
시중은행의 한 영업본부장은 “지점장에게 전결권이 없어지다 보니 기업 고객들도 은행 지점장에게 얘기해봐야 실속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점장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지 않는 지점은 신규 실적을 만들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각 은행들이 모두 활동 고객 수를 늘리기 위한 멤버십 마케팅에 사활을 걸면서 지점장들 역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비이자이익 부분의 효자였던 방카슈랑스 판매 실적이 날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KPI(성과평가지표)상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수익도 별로 나오지 않는 멤버십 확보에 영업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해 말 은행별로 임원급의 대거 물갈이가 예고된 것 또한 지점장들을 발로 뛰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 C은행의 경우 올해 말 부행장급 3~4명이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부행장 자리를 노리는 각 지역 본부장들 간의 경합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C은행의 한 관계자는 “3·4분기 실적이 연말 인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승진을 노리는 지역 본부장들이 지점장들을 무섭게 압박하고 있다”며 “덕분에 각 영업점 직원들 또한 어느 때보다 치열한 하반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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