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허니버터 맛이 대세였다면 요즘은 바나나가 먹거리 시장을 사로잡고 있다. 식품·주류업계에 바나나 열풍이 불자, 업체들이 앞다퉈 바나나 맛 신제품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바나나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소비자들에 친숙하면서도 과자 같은 제품들과 잘 어울린다는 점을 인기 요인으로 꼽고 있다. 과자에서 케이크, 막걸리까지, 바나나 맛으로 무장한 다양한 제품들의 무한 변신을 살펴본다.
바나나를 활용한 식음료 제품의 인기가 뜨겁다. 제과 ·제빵은 물론, 주류업체까지 바나나를 활용한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 바나나 열풍에 불을 붙인 건 오리온이었다. 오리온은 지난 3월 창립 60주년을 맞아 ‘초코파이 바나나’ 를 출시했다. 1974년 출시된 초코파이가 42년 만에 새롭게 변신하자 소비자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현재까지 초코파이의 변신은 ‘대성공’으로 보인다. 출시 한 달 만에 1,400만개(4월 11일 기준)가 팔려나갔다. 3?4월 누적 매출만 90억 원을 기록했다. 없어서 못 파는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을 정도다. 초코파이 바나나를 쉽게 구하지 못하자 소비자들은 “재고를 많이 쌓아 놓고도 품절 마케팅 차원에서 물건을 안 파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오리온은 회사 블로그를 통해 “절대! 네버!(아니다). 최대한 생산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모자라 생산 라인을 추가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오리온은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현재 한 달에 초코파이 바나나 약 2,300만 봉지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같은 인기를 간파한 롯데제과도 ‘몽쉘 초코&바나나’ 출시로 신속하게 대응했다. 이 제품도 출시 한 달 만에 1,500만 개가 팔려 나갔다. 롯데제과 관계자가 “몽쉘 초코&바나나의 생산량을 2.5배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할 정도로 시장의 호응을 얻고 있다. 롯데제과는 이 여세를 몰아 다른 제품에도 다양하게 바나나 맛의 매력을 심고 있다. ‘카스타드 바나나’, ‘말랑카우 바나나우유맛’, ‘바나나 먹은 감자칩’, ‘칸쵸 바나나우유’ 등 바나나를 활용한 다양한 제과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바나나는 주류업계와도 만나 다채로운 제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국순당은 지난 4월 바나나 퓨레를 넣은 막걸리인 ‘국순당 쌀 바나나’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미국과 영국, 중국, 일본 등 11개 국가에서 동시 출시됐다. 국순당 관계자는 “쌀 바나나 막걸리 출시를 계기로 막걸리가 젊은 소비자층에게 가까이 다가가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막걸리는 초도물량 120만 병이 10여 일 만에 완판됐고, 5월부턴 주점으로도 출시된다. 이 외에도 금복주는 애플민트와 바나나 첨가물을 넣은 칵테일 소주 ‘순한 참 모히또 바나나’를 출시했다(알코올 도수는 기존의 ‘순한 참’ 시리즈보다 더 낮은 10도다).
제빵업체와 커피전문점 역시 바나나 열풍을 놓치지 않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바나나를 재료로 사용한 에그타르트 ‘바나나 타르트’를 새로 내놓았고, 던킨도너츠도 바나나 모양 도넛에 바나나 연유를 가득 채운 제품을 출시했다. 신세계푸드는 ‘데이앤데이’ 브랜드로 ‘치키타바나나케이크’를 선보여 출시 한 달 만에 2만 개를 판매했다. 이에 신세계푸드는 베이커리 브랜드를 총동원해 바나나 케이크, 바나나 소보로, 바나나 바게트, 바나나 크루와상 등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삼림식품도 최근 ‘바나나 시리즈’를 내놓았다. 자사 대표 상품인 ‘크림빵’과 ‘보름달’에 신선하고 달콤한 바나나 크림을 듬뿍 넣은 ‘바나나 크림빵’과 ‘바나나 보름달’, 부드러운 식빵 사이에 바나나 크림을 바른 ‘바나나 크림샌드’ 3종을 선보여 소비자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커피업계에선 스타벅스가 최근 ‘구운 바나나 케이크’를 내놓아 20대 여성 소비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고, 이디야커피는 한동안 접었던 바나나쉐이크를 재출시해 바나나 맛 열풍에 동참하고 있다.
바나나 맛의 인기에 반사 이익을 보고 있는 제품도 있다. 오랫동안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았던 빙그레의 ‘바나나맛 우유’가 그 주인공.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는 1974년 출시된 장수제품이지만, 바나나 맛 열풍 덕분에 올해 들어 4월까지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2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식품업체들이 바나나 맛을 신제품 개발에 적극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식품 관련 업계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바나나 맛이 소비자 선택의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식품업체들은 불황일수록 익숙한 맛을 활용하는 안정적 전략을 취하는데 바나나 열풍이 딱 그런 사례”라고 설명했다.
제과업계에선 바나나를 침체 된 파이류 시장(초코파이와 몽쉘 등등) 을 되살릴 구원투수로 보고 있다. 국내 파이 시장은 최근 매출 감소세가 이어져 새로운 고객을 끌어모을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시장 조사 업체 닐슨 데이터에 따르면 2013년 2,836억 원이던 파이 시장 매출은 2014년 2,680억 원, 지난해에는 2,622억 원으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지난해 제과업계를 강타한 허니버터칩에 이어 올해는 바나나 열풍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올해 연말까지 전체 파이 시장 규모가 지난해 대비 15% 정도 늘어난 3,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음식 자체로만 봤을 때도 바나나는 활용도가 높다. 강하지 않은 부드러운 맛을 갖고 있어 어느 식품과 혼합해도 맛을 내기가 좋다. 사계절 두루 접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대중적이면서도 고객들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과일이 바나나”라며 “맛 테스트 결과 바나나가 초콜릿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웰빙 이미지도 바나나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초콜릿이나 단순한 설탕 성분은 열량이 높고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는 데 반해, 바나나는 과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건강에 좋다고 여겨진다. 바나나는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함량이 적고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성분인 칼륨도 풍부하다. 변비에 좋은 불용성 식이섬유를 함유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여러 과일 중 바나나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고 소비자에게 익숙한 맛인데다 건강 과일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활용도가 크다”며 “지난해 꿀맛 트렌드가 올해 바나나로 이어지고 있어 당분간은 바나나 열풍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바나나 열풍이 간식거리에서 주류로까지 확대되고 있지만, 바나나가 앞으로도 계속 주인공 자리를 굳힐지는 확실치 않다. 식품업계의 유행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만큼, 바나나 맛 열풍이 조만간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승신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초코파이 바나나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바나나 소재가 핵심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아는 초코파이 브랜드에 약간의 새 요소를 가미해 다시 부각시킨 게 포인트였다”며 “바나나 열풍에 휩쓸려 무조건 관련 제품을 내기보단,기존 장수 제품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이 허니버터 시리즈, 초코파이 바나나의 뒤를 이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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