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의 벌크선인 ‘한진패라딥(HANJIN PARADIP)’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억류됐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진해운이 용선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하자 해외 선주사가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한진해운은 캐나다 선주사인 시스팬에도 석 달째 용선료를 주지 못하고 있어 벌크선에 이어 컨테이너선까지 연쇄 억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본지 25일자 1면 참조
2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8만2,158DWT(재화중량톤수)급 벌크선인 한진패라딥호가 지난 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억류돼 발이 묶였다.
과거 현대상선 소속 선박이 억류됐다 풀려난 적은 있지만 한진해운 소유 선박이 해외에 억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해운의 한 관계자는 “용선료 지급을 위해 선박 등을 팔아 현금 확보 작업을 벌이던 중 남아공에서 선박이 억류됐다”며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선박은 화주와 선주가 각각 한 곳이라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으로 해운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돈을 내지 못하는 화물선이 항구에서 1~2일가량 억류됐다가 돈을 주고 풀려나는 일이 종종 벌어지긴 하지만 한진해운급 대형사에서는 흔치 않은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해운업계에서는 벌크선에 이어 컨테이너선까지 억류되는 사건이 벌어질 경우 더욱 심각한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컨테이너 선박은 글로벌 해운 얼라이언스(동맹)에 가입돼 다양한 화주들의 짐을 싣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만약 컨테이너선이 억류돼 화물 운송이 지연되면 다국적 법정 소송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미 일부 해외 선주들은 “용선료를 더 이상 연체하면 선박 억류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한진해운 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길 바쁜 한진해운의 구조조정에 이번 사태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진해운의 미납 연체료는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장 손에 쥔 현금이 없어 용선료를 마련할 길이 막막한 탓이다. 채권단은 지난달 자율협약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추가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이달 말 에이치라인해운 지분 매각 대금 400억~500억원이 확보되지만 당장 2~3달씩 밀린 용선료를 지급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진해운 역시 기업 회생을 위해 용선료 인하 협상을 벌여야 하는데 선박 억류가 연쇄적으로 벌어질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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