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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산업 기로에 서다] <중> 주먹구구 정책이 통신 갈등 불렀다

주파수 정책 오판에 속터지는 이통사… "공급 로드맵 새로 짜야"

답변하는 최양희 장관<YONHAP NO-2459>
광개토플랜을 기반으로 한 주파수 공급계획이 차질을 빚자 국회에서 대책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최양희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지난 2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책현안 질의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대 초 정부는 이동통신 산업 분야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국제적으로 3세대 무선통신(3G·LTE) 이통 서비스 규격은 유럽식(WCDMA 방식)이 대세였지만 후발 주자인 미국식(CDMA2000 방식)도 함께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통신부(현 미래창조과학부)는 3개 대역폭의 롱텀에볼루션(LTE)용 주파수를 이통사들에 유상으로 내놓으면서 그중 1개를 미국식 용도로 못 박고 2개는 유럽식으로 배정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자격심사에서 탈락한 하나로텔레콤을 제외하면 누구도 상업성이 낮은 미국식을 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당시 양승택 정통부 장관은 LG텔레콤(현재 LG유플러스)에 미국식을 택해달라고 러브콜을 보냈다. 유럽식 LTE 주파수를 배정 받으려다 실패한 LG유플러스는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세계 어느 이통사도 미국식을 선택하지 않고 해당 방식의 휴대폰을 만드는 제조업체도 전무한 지경에 처하자 LG유플러스도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LG유플러스는 끝내 용도변경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2006년 해당 주파수를 반납하면서 4,200억원대의 사업 포기 위약금을 물어야 했다. 반납한 주파수는 경매 전에 용도변경돼 다른 이통사가 낙찰 받아 LTE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주파수 정책 오판이 가져온 단적인 피해 사례로 꼽힌다. 더욱이 당시 여파가 이어지며 2010년과 2011년·2013년의 후속 주파수 배분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와 업계 간 감정대립 등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내년 말 사용기간 만료를 맞는 2.1㎓ 대역의 LTE 주파수 배분을 놓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다.

주파수 정책 실패가 부른 참사는 또 있다. 2000년대 초 국책연구기관이 민관 협력으로 개발한 초고속 무선 인터넷 통신기술인 '와이브로'다. 정부는 와이브로를 적극 지원하겠다며 일부 주파수를 와이브로용으로 이통사들에 유상으로 할당했다. 그러나 와이브로는 3G 기술인 LTE에 밀려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거액을 주고 해당 주파수 구매와 설비 투자를 했던 SK텔레콤과 KT 등은 헛돈을 쓴 셈이 됐다. 그나마도 와이브로에는 아직 80만명가량의 이용자들이 남아 있어 업체가 자율적으로 사업을 접을 수도 없다. 자칫 막대한 피해보상을 부담을 떠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 이통업계의 전파 가뭄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2013년 말 "주먹구구식 주파수 공급방식을 개선하겠다"면서 중장기 '광개토플랜'을 내놓았지만 이미 무용지물이 됐다. 당시 예상에 비해 주파수 수요가 폭증한데다가 정부가 공급한 주파수 물량도 당초 계획보다 절반 수준에 그친 탓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가 사문화된 광개토플랜을 전면 재검토해 주파수 공급 로드맵을 새롭게 짜야 한다"며 신규 공급 확대를 주문했다.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유휴 주파수 대역을 활용하자는 의견이 국회 등에서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5㎓ 대역 내 30㎒ 밴드(주파수 대역폭)와 2.5㎓ 대역 내 40㎒ 밴드, 3.5㎓ 대역 내 40㎒ 이상의 밴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대안으로는 LTE 방식 중 중국 등이 도입하고 있는 시분할방식(TDD)을 국내에도 도입하는 것이다. 국내 LTE는 주파수를 마치 상·하행선 왕복도로처럼 나눠서 각각 데이터 업로드용과 다운로드용으로 구분해 쓰지만 TDD는 주파수를 편도 일방차선처럼 쓰되 시간대별로 상·하행선으로 번갈아 활용한다. 즉 "왕복 차선이 아닌 편도 차선용 주파수만 있으면 돼 TDD가 가용 주파수를 확보하기 더 쉽다"는 게 정인준 대구대 경영학과 교수의 분석 보고서에 담겨 있다. 미래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결정된 바는 없다"며 "여러 이해관계자의 논의를 거쳐 방안이 결정되면 발표할 것"이라고 거리를 뒀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규 주파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정부가 기존 주파수를 회수해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다"며 "자칫 회수당한 주파수 대역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다른 대역으로 난민처럼 떠돌며 트래픽을 가중시켜 통신 대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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