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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국립미술기관인 테이트(Tate)가 2015년에 수집한 신소장품에 국내 작가로는 유일하게 윤석남의 1995년작 설치작품 '금지구역Ⅰ'이 선정됐다고 전속화랑인 학고재갤러리가 6일 밝혔다.
'금지구역Ⅰ'에는 당시 한국가정에서 유행하던 서양식 의자와 무쇠갈고리, 소파 등이 등장해 여성의 욕망과 근대화의 물질적 가치가 빚은 갈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윤석남은 대표적인 한국의 여성주의 작가이자 민중미술가다. '민중미술'이란 사회현실에 주목한 작가들이 정치적 메시지를 짙게 깔고 작업한 작품들을 가리킨다. 윤석남의 경우 어머니의 모성과 강인함, 억눌려 지내온 여성의 주체성을 표현하며 여성 인권과 양성평등의 실천 의지를 작업에 반영해 왔고, 1985년 활동했던 민중미술조직 중 하나인 '시월모임'의 회원이었다. 문화적 자부심으로 높은 진입장벽을 치고 있는 영국의 미술관에서 윤석남이 거둔 쾌거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으로 고통의 여성사(史)를 지닌 우리 국민에게 '새해선물'이라 할 정도로 뜻깊다.
윤석남을 포함한 '민중미술'의 활약이 심상치 않다. 미술계는 부진하던 'K아트'를 세계 미술시장의 핫 아이템으로 끌어올린 '단색화'를 이을 차기 주자로 '민중미술'을 주목하고 있다. 미술관과 화랑들이 야심찬 기획전을 준비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학고재갤러리(대표 우찬규)는 지난해 상하이에서 대표적 민중미술가인 강요배와 인도네시아 작가의 2인전을 열어 민중미술 국제화의 포문을 열었다. 학고재는 광주비엔날레 등으로 해외 미술계 관계자들이 다수 방한하는 올 하반기를 겨냥해 민중미술 거장 신학철의 대규모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가나아트센터(대표 이정용)는 1980년대 민주화 시기의 민중미술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하는 전시 '한국현대미술의 눈과 정신2'를 오는 2월 개최한다. 가나아트는 지난해 같은 제목으로 단색화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이번 민중미술 전시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기획을 맡아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는 오는 4월 서소문 본관 2층에 60여평 규모로 민중미술 상설전시장을 전격 개관한다. 200점에 이르는 서울시립의 민중미술 소장품은 2001년 이호재 당시 가나아트 대표의 기증으로 확보됐다. 대표작가는 권순철·김정헌·민정기·박불똥·서용선·손장섭·신학철·안창홍·오윤·이종구·임옥상·한애규·홍성담·홍순명 등이다. 미술관 측은 그간의 작품 연구를 바탕으로 연 2~3회 기획전을 열 계획이다.
그러나 민중미술이 한국미술의 독특한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반면 한국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단색화 만큼의 국제화가 쉽지 만은 않을 수 있기에 체계적 접근이 필요할 전망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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