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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은 대기업 간 사업 재편과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매물 출회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KDB대우증권과 쌍용양회 등 지난해 말 잇따라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기업들의 매각 작업도 마무리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 구조조정 결과로 마지못해 나와 거래되는 네거티브(Negative) 딜이 크게 증가할 경우 모처럼 활기를 보였던 M&A 시장이 얼어붙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6일 금융투자(IB)업계에 따르면 2015년 큰 폭으로 증가했던 국내 M&A시장은 새해 들어 조선·철강·해운 등 한계 업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대기업 간 사업 재편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2015년 국내 M&A 시장은 거래대금 기준 약 77조원 규모로 전년의 69조원에 비해 11.6% 늘며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SK와 SK C&C의 합병을 비롯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삼성과 롯데의 화학사업 빅딜,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 등 대기업들이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M&A 거래가 활성화됐다.
올해 들어서도 이 같은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피인수기업의 원하는 사업부만 인수하는 삼각분할합병 등 다양한 정부 정책들도 국내 M&A 시장 활성화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명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대기업들은 경기회복이 불확실하고 재고부담이 높아진 상황에서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M&A를 통한 성장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제조업 기준 시가총액 상위 300개 기업이 보유한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3·4분기 기준 127조5,000억원으로 전년의 95조9,000억원에 비해 1년 만에 33% 증가했다.
국내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도 같은 기간 8.1%로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IB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 진출을 선언한 삼성전자가 빠른 시장 진입과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해외 자동차 부품업체의 M&A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0월 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후 두 달 만에 두 건(CJ헬로비전, OCI머티리얼즈)의 M&A를 성사시킨 SK그룹도 반도체 소재와 에너지 부문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M&A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LG그룹 역시 올 초 동부팜한농 인수를 마무리 지을 예정이며 자동차 전장부품 회사인 독일 호른슈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금융당국의 방침에 따라 산업은행이 보유한 비금융 자회사들도 M&A 시장에 나온다. 산은·현대차·한화테크윈 등 대주주로 구성된 주주협회의 공동매각기한이 지난해 말로 종료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매각 1순위로 꼽힌다. 주요 주주인 두산(디아이피홀딩스)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보유지분(5%) 매각에 나설 예정인 가운데 최대주주인 산은이 전체 지분(26.75%) 중 일부를 먼저 팔 가능성이 높다. 금융투자업계는 산은이 실제 분할 매각에 나설 경우 헐값 매각에 따른 배임 논란을 피하고 방산업체의 특수성을 고려해 보유지분 26.75% 가운데, 15% 정도를 남기고 나머지를 먼저 팔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말 M&A 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미래에셋증권의 KDB대우증권 인수 작업도 올 하반기에 마무리될 전망이다. 미래에셋컨소시엄(미래에셋증권·미래에셋자산운용)은 KDB대우증권 본입찰에서 2조4,000억원대를 써내 지난해 12월 24일 인수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중 확인 실사를 거쳐 2월부터 산은과 최종 가격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가격 협상 이후 금융위원회의 대주주변경 승인 절차까지 감안하면 늦어도 올 하반기 안에는 인수 작업이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한앤컴퍼니를 인수우선협상자로 선정한 쌍용양회 채권단은 1·4분기 안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방침이다. 지난해 CJ헬로비전을 인수한 SK텔레콤 역시 공정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합병 작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올해 M&A 시장이 풍년을 이룰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일각에서는 질적인 측면에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올해부터 금융당국과 채권단 주도로 조선·철강·해운 등 한계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경우 M&A 시장에 악성매물이 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은의 비금융자회사 매각 물량까지 쏟아지면 병목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
유동성 위기를 겪거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들이 마지못해 매물로 나와 거래되는 네거티브(Negative) 딜이 많아질 경우 모처럼 활기를 띠던 M&A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관계자는 "올해 M&A시장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던 지난해보다 양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지만 동시에 기업간 선제적 사업 재편에 따른 자율 빅딜보다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네거티브 딜이 양산될 가능성도 높아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민우기자 ingagh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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