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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희망이 없다. 고려의 숨통을 끊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은 힘줘 말한다. 역사적 인물을 극화시켜 내놓은 드라마의 한 장면에 시청자들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까닭은 헬조선에 살고 있다는 자조감때문일 것이다.
'지옥'(Hell)과 '조선'을 합친 인터넷 신조어 '헬조선'만큼이나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말도 드물다. 아무리 노력해도 청년들은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고, 가계부채는 쌓여가고, 빈부격차는 커지고만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헬(hell)조선'(hellkorea.com)에 들어가 보면 지금 한국사회가 기득권의 부조리로 백성이 도탄에 빠졌던 14세기 고려나 19세기 조선쯤 된다는 촌평일색이다. 헬한국이 아닌 헬조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도 신분제 사회 조선의 봉건적 폐습이 남아있다는 풍자가 섞여서다.
이처럼 희망이 없다고 푸념하는 이들에게 '헬조선'에 대한 고찰과 해법을 담은 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한국은행에서 34년간 근무한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이 경제 분야에 집중해 헬조선 구하기에 나섰다. 정 소장은 '얽히고 설킨' 한국경제 문제의 뿌리를 기득권의 '봉건적 특권'에서 찾는다.
이 봉건적 특권을 만들어 내는 '만악의 근원'은 '높은 부동산 가격'이라고 지적한다. 높은 부동산 가격이 국민경제의 생산물을 노동자나 기업가 또는 금융자산 소유자보다 부동산 소유자가 더 많이 가져가게 만들고, 여기에 임대소득·양도소득 등 부동산 관련 소득에 세금도 별로 없다는 점에서 사회 공정성과 경제정의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집단과 관료, 공무원, 교수, 공기업 직원, 대기업 정규직 등의 우리 사회 특권층의 자산 중 70%이상이 부동산에 몰려있다는 정 소장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정대영 소장은 "스포츠 스타도 돈을 벌면 빌딩을 사서 자산을 늘리는 구조"라며 "금융자산에 투자하거나 생산적인 투자로 돈이 흘러가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심하다"고 말했다.
주택임대소득은 공시지가 9억원 이하 1가구 1주택인 경우 임대소득이 아무리 많아도 비과세라는 점에서 1주택자가 자기 집을 월세로 놓고 자신은 다른 집에 전세를 살면서 임대수입을 올리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니 허리띠를 졸라매고 돈을 모아도 오른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고, 대출을 받거나 월세를 내야 한다. 소비는 계속 위축되고 성장세는 둔화되며 자영업자의 영업은 점점 어려워지는 악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정 소장은 주택임대소득은 1주택과 다주택자 등 구분없이 임대소득의 규모에 따라 차등과세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한다. 이 밖에도 정책의 불투명성과 자의성, 금융산업의 낙후성, 어설프고 부실한 조세제도와 복지제도 등의 문제 등을 차례로 짚고 대안은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정 소장이 제시한 대안에 앞서 한국이 헬조선으로 전락한 배경을 정확하게 확인하려는 독자들은 이번 책에 앞서 2011년 출간한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를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다. 그는 헬조선을 극복할 대안 있는 지식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내년에는 송현경제연구소를 지식협동조합형태로 전환하고, 부동산, 정책, 창업, 금융, 조세·복지 제도 등의 분야별로 '한국경제 대안찾기' 시즌2를 시작할 예정이다. 1만5,000원
/송종호기자 joist189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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