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유통산업발전법보다 규제 강도가 확대된 개정안이 이날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됐기 때문이다.
상정된 유통법 개정안은 국회가 골목상권과 영세상인을 보호한다는 취지 아래 대형 유통업체의 영업규제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대형마트 영업제한 시간을 오전10시~오후10시로 현행보다 4시간 늘리고 의무 휴업은 2일에서 3일로 확대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개정안은 여야 간 즉각 처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려 이날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22일 법사위가 또 열리고 23일 국회 본회의가 예정된 가운데 법안이 통과될지 미지수지만 한편 연내 통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유통업계는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강제 법이 아닌 자율 합의를 통해 골목상권과 상생하는 유통 시장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농어민과 영세상인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협 받게 됐다며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농어민과 대형마트 내 영세상인들이 유통법 개정안 반대에 힘을 보태면서 그간 대형마트·중소상인·정부 3자 간에 논의되던 대형 유통업체 영업규제 논란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대형 유통업체들은 15일 대·중소 유통단체의 모임인 유통산업발전협의회에서 매월 평일 이틀 휴무와 2015년까지 인구 30만명 미만 중소도시에서 대형마트 출점 자제를 골자로 한 자발적 상생 방안을 마련하며 해묵은 상권 갈등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유통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며 일이 꼬였다. 19일 소상공인 단체인 상인연합회는 당장 합의가 유명무실해졌다며 반발했고 급기야 진정성 없는 협의회에는 참여할 수 없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유통법 개정안으로 대형 유통업체와 소상공인의 갈등이 재점화된 셈이다.
여기에다 재래시장 소상공인과 대형마트 내 소상공인 간 갈등도 우려된다.
대형 유통업체 규제에 대한 농어민과 대형마트에 입점한 영세상인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대형마트 농어민·중소기업·임대상인 생존대책위원회(가칭)는 22일 오후4시 서울역광장에서 이마트ㆍ홈플러스ㆍ롯데마트 등의 협력 사업자 수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유통법 개정안 처리에 대한 항의 집회를 열 계획이다. 집회에는 추가 영업규제로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는 대형마트의 파견사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생존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대영 우영농장 사장은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둘러싼 공방을 지켜보다 우리로서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고 판단해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중소기업ㆍ자영업자ㆍ농어민들의 피해를 무시하고 소비자들의 편의를 도외시하는 악법"이라면서 "대형마트와 중소상인 간 자율합의를 무시하고 정치권에서 불필요하게 유통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강력한 목소리를 낼 필요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유통법 개정안으로 연 매출 8조1,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돼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이 헌법상 직업의 자유에 대한 제한으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헌법상 행복추구권에 해당하는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발생하고 헌법 제11조 평등원칙에도 위반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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