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의 선봉에 서 있는 재정경제부 관료들이 답답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한 해 내내 갈고 닦은 정책들이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의해 사사건건 발목이 잡히고 있는 탓이다. 재경부가 경제정책의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평가에 앞서 여당이 여론에 지나치게 밀리면서 ‘발목잡기’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비등하다. 9일 정부 당국과 국회에 따르면 재경부의 정책들이 정기국회를 맞아 야당이 아닌 여당에 의해 훼손당한 것이 굵직한 것만 1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정책은 재경부가 하나같이 1년 이상 공을 들여온 것이지만 당정 회의만 열렸다 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있다. 당장 이날 열린 당정협의회에서 확정된 최저가낙찰제 확대 방안과 회부감사 대상 기업의 조정 건은 재경부의 의견이 ‘배척’당한 대표적 사례였다. 최저가낙찰제의 경우 재경부는 현행 5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낮춰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해왔지만 결국 300억원으로 낮춘 뒤 현 정권이 끝날 때까지 단계적으로 하향시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범위도 정부는 현행 자산총액 기준 70억원 이상에서 최소 80억원 이상으로 높이기 위해 수 개월 동안 공을 들였지만 당에 의해 허사가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주세율 인상 방안의 경우 한덕수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비롯한 재경부 관료들이 수 차례에 걸쳐 국회에 가서‘얘기가 잘 될 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여당의 반대에 힘도 쓰지 못한 채 없던 일이 됐다. 금산법상 시정조치의 소급적용의 경우 ‘삼성카드에만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재경부의 방안은 국회로 넘어가기도 전에 색깔을 잃어버렸다. 올 세제 개편안에 담았던 간편납세제(성실납세제)나 사전상속제ㆍ소비자단체소송 등도 야당과 이해집단들의 반발에다 일부 여당 의원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연내 입법도 힘들어질 판이다. 민간연구소의 한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정책들에 대해 국회가 견제기능을 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면서도 “최근 상황들을 보면 당의 간섭수위가 경제수장인 부총리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흔들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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