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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배 사고가 나서 형과 누나들이 못 돌아고 있다며? 형, 누나들의 엄마 아빠는 정말 슬프겠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박창식(38·가명)씨는 저녁을 먹는 도중 초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의 이 같은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혹여나 세월호 참사를 자녀가 알게 될까 봐 집에서는 뉴스도 보지 않는 등 나름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물어보니 학교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알게 됐다는 것. 박씨는 더 이상 숨기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녀에게 대략적으로 사건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어린이날에 놀이공원 대신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함께 가기로 했다.
박씨는 "무조건 숨기기보다는 자녀에게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고 슬픔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자녀와 함께 분향소를 방문한 뒤에 인근 덕수궁 등을 가볍게 산책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유미(28)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주름을 제거하는 효도시술을 선물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아버지가 먼저 "세월호로 안타깝게 숨진 고등학생들이 다 내 손주들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효도선물 대신 유가족들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을 꺼내자 어머니도 흔쾌히 동의했다.
김씨는 "부모님의 주름을 펴드리지 못한 것은 안타깝지만 기부를 통해 세월호 참사로 가슴 아파하시는 부모님의 심정이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많아 예년 같으면 행사로 들뜨기 쉬운 가정의 달 5월이지만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아직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실종자 수십 명이 발견되지 않고 있어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기 때문에 요란한 행사보다는 차분한 추모 분위기를 느끼려는 시민들이 많다.
1일 의료계에 따르면 효도시술 등으로 5월이 대목인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의 시술 문의나 예약이 평년보다 다소 줄어든 분위기다.
여러 개의 지점을 갖춘 유명 피부과병원의 원장인 A씨는 "세월호 영향 때문인지 효도시술 문의 건수가 예년보다 20%가량은 줄어든 것 같다"며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세월호 사고 이후 시술 문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부 최모(42)씨도 연휴 때 호텔 뷔페에서 가족끼리 외식을 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간단한 음식을 해 먹는 일정으로 바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고 있다.
고영훈 고려대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국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가 큰데 이런 슬픔과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병이 될 수 있는 만큼 애도하고 추모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픔을 덜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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