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발 낸드플래시 위기’는 사실 예고된 것이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주력 제품인 아이팟의 매출 증가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신제품 발표도 미뤄왔기 때문. 실제 지난해 1ㆍ4분기 50%에 달했던 아이팟의 매출 증가율은 2ㆍ4분기 24%, 3ㆍ4분기 21%, 4ㆍ4분기 17%로 떨어졌다. 여기에 지난 1월 애플의 전략발표회인 ‘맥월드 2008’에서 애플이 기존의 아이팟이나 아이폰 같은 새로운 성장제품을 선보이지 못하자 낸드플래시 시장의 분위기는 급격히 냉각됐다. 지난해 4ㆍ4분기에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의 1~3위인 삼성전자ㆍ도시바ㆍ하이닉스반도체 등의 매출은 각각 2.1%, 2.1%, 5.6%씩 감소했고 전체 시장규모는 직전 분기보다 2.4%가량 줄어들었다. ◇멈추지 못하는 기차=시장상황은 악화되는데도 공급업체들은 낸드플래시 생산을 늘리기만 했다. 경쟁사가 무너질 때까지 출혈경쟁을 지속하는 ‘치킨게임’에 돌입했던 것. 판세를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부문에 7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나아가 생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낸드플래시에는 40나노미터급 공정을 적용시킨다. 하이닉스 역시 청주공장의 12인치 라인을 3ㆍ4분기 중에 가동해 40나노미터급 공정을 적용한 낸드플래시를 양산할 계획이다. 일본 도시바도 기세싸움에 나서 삼성전자를 따라잡겠다며 올해 생산량을 2배로 늘렸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 와중에 낸드플래시 가격은 3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애플 신제품 발매시기가 관건=업계에서는 이번 위기의 시작이 애플에서 시작된 만큼 해결의 열쇠도 결국 애플이 쥐고 있다고 분석한다. ‘애플발 위기’가 1~2개월 안에 해소될지, 아니면 장기화할지는 애플이 하반기 수요를 상반기로 앞당기기 위해 얼마나 강력한 의지로 신제품을 출시하느냐에 달렸다. 김장열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장전문가들 사이에서 낸드플래시 가격이 바닥을 쳤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결국 애플이 얼마나 판매부진을 털고 나오느냐가 관건”이라며 “현재로서는 오는 5월이 지나봐야 낸드플래시 가격이 어떻게 진행될지 판가름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이 낸드플래시 주문 축소를 어느 기업에 집중시킬 것인지도 관심이다. 업계에서는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기업의 물량을 우선적으로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납품조건 역시 혹독하게 적용될 것이 당연하다. 부동의 낸드플래시 1위 기업 삼성전자도 안심할 수 없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도시바에 밀려 있는 하이닉스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내놓지 못한다면 가장 먼저 충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치킨게임은 항상 누가 생존하느냐가 핵심”이라며 “애플을 제외한 낸드플래시 수요처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도 게임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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