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기업인들이 억울해 하는 것 중 하나는 본인 생각으로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느 날 갑자기 배임행위로 문죄 당한다는 것이다. 제약회사의 대표이사로 일하면서 사업확장을 위해 유통회사인 계열사에 자금을 대여하게 했다가 배임죄로 기소된 어느 기업인은 변호사인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자기 행위가 죄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과서의 설명으로 배임죄는 위태범이라고 한다.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그럴 위험을 발생하게 하면 죄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담보 없이 대출을 해줬다가 별 탈 없이 대출금이 회수돼도 그런 대출은 손해를 발생시킬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론상 배임죄가 된다. 문제는 이런 이론을 고지식하게 적용할 경우 안전하다는 확신 없이 하는 모든 의사결정과 그에 따른 투자행위가 배임죄로 처벌받을 가능성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담보가 다소 부족했지만 여러 건의 대출을 해주고 그 후 대부분이 회수됐는데도 대출금 전부에 대해 배임죄로 기소된 사건에서 회수된 부분만이라도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이 까딱도 하지 않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어느 기업인은 제공할 담보는 없어도 리모델링에서 실패한 전적이 없는 업체에 담보를 받지 않고 도급을 줬다가 배임죄로 기소됐다. 리모델링이 잘돼 재분양에 성공하면서 상가가 활성화됐는데도 법원은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유죄판단의 이유를 단순하게 풀이하자면 결과야 어쨌든 위험한 일을 했다는 것인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데 이윤이란 경제학의 기본이론에서 투자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내함에 대한 대가라고 하지 않던가. 더욱이 법률가의 판단은 기본적으로 사후적 판단인데 이것이 자칫하면 배임죄에서는 결과책임을 묻는 게 되고 말 위험성도 있다. 배임죄가 양심적인 기업인의 합리적인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면 올바른 사법작용이라고 하기 어렵다.
국회에서 기업인의 경영행위에 적용되는 배임죄 처벌을 완화하는 내용으로 법률개정안이 발의됐다고 한다. 상법 제282조 2항에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어떠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 상당한 주의를 다해 회사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고 선의로 믿고 경영상 결정을 내리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라는 단서를 넣어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 중에는 이미 경영판단의 원칙을 받아들인 것이 있다. 그러나 98퍼센트 이상의 유죄율을 보이는 우리의 형사사법에서 실제로 형을 선고하는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이 이 원칙을 시원하게 적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법률이 개정되더라도 개정된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선 법률가의 인식이 정작 더 큰 문제이다. 걸리면 기소하고 기소하면 유죄로 판결하는 풍토라면 법을 바꾸어도 별무소용일 게다. 배임행위 아닌 배임죄는 없어져야 한다. 법원과 검찰의 확고한 재인식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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