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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김모 사장은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매출이 부진했던 한 가맹점주가 본사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다. 가맹점주는 "본사의 수익 뜯어가기 때문에 미치겠다"며 "사장 어디 있느냐. 을에게 이래도 되느냐"고 호통을 쳤다. 김 사장은 "갑을관계가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을 빌미로 무조건 가맹 본사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점포주의 책임"이라며 "잘못된 갑을관계를 청산하는 것은 수긍할 수 있지만 사회적 여론을 명분으로 떼 쓰기식으로 다가서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 사회에서 갑과 을의 관계를 건전한 틀로 되돌리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경제적 약자가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후진적 경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을'이 자신의 이기주의에 함몰돼 사회질서를 무너뜨린다면 이 또한 포퓰리즘적 행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무조건적이고 여론몰이식의 갑을관계 청산 움직임이 오히려 비틀어진 사회문화를 만드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고 있다.
지난 17일 현대백화점이 한 광고 하청업체를 서울 동부지법에 고소한 것도 같은 줄기다. 하청업체가 '갑의 횡포'라며 현대백화점을 제소하자 현대백화점이 사문서 위조 및 사기 등의 혐의로 맞대응한 것. 여론몰이식 갑을관계 청산이 낳은 부작용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도를 넘는 움직임이 공정경쟁을 통한 경제발전이라는 룰을 뿌리부터 부정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병오 중앙대 겸임교수(창업학 박사)는 "갑을관계의 새로운 질서를 이유로 정당한 거래관계마저 부정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며 "자칫 자본주의의 기본질서를 깨 창업시장마저 흐리는 결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왜곡됐던 갑을관계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면서도"이런 활동이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대승적 차원으로 가야지 경제활력을 죽이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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